“협상조기타결” 미 의지 천명/부시가 내놓은 「팔」 과도자치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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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앞으로 1년” 시한까지 못박아/「영토 대가로 평화」 실천방안 제시한셈
이번 마드리드회의에서 중동문제해결을 꼭 실현시키겠다는 의지를 갖고 30일 개막연설을 행한 조지 부시 미대통령은 「영토를 대가로 한 평화」를 분쟁해결방식으로 제시했다.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장기간에 걸쳐」 점령지로부터 철수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아랍측에 대해서는 이스라엘의 안전보장요구를 수용토록 요청하면서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방안으로 이스라엘 점령지내의 과도적인 팔레스타인 자치를 내놓고 있는 것이다.
부시대통령은 「미국은 평화의 촉매제일뿐 평화의 강압자가 될 수 없다」고 미국의 역할이 제3자의 위치에 있음을 강조하면서도 이 연설에서 5년간의 과도자치정부수립을 통한 팔레스타인 문제해결,1년내 협상종결 목표 등을 밝힌 것은 미국이 생각하는 평화구상대로 조기 협상타결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번 회담의 최대관건인 이스라엘대 팔레스타인협상에 대해 5년간의 자치를 실시하되 자치 3년째되는 해부터 팔레스타인의 영구적 지위에 관한 협상을 다시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이에 관한 양측간 협상을 지금부터 1년내에 완결토록 시안을 못박은 점은 앞으로의 회의추이와 관련해 특히 주목되고 있다. 이는 이번 협상의 결론과 함께 그 결론에 이르는 시한까지 미리 정해 제시한 셈이다.
과연 다음주부터 시작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쌍무 협상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수립문제에 논의의 초점을 두게 될지는 물론 협상당사국에 달린 문제다. 그러나 부시대통령의 이날 개막연설로 자치정부 수립을 위한 쌍무 협상의 중심테마가 될 것은 분명해졌다는게 회의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베이커 미 국무장관은 더욱 이점을 명백히 하고 있다. 그는 이번 회의당사국들에 보낸 초청장 내용의 골자는 이스라엘점령 지역에서의 팔레스타인 과도자치 정부수립이었다고 밝히고,이 초청에 응해 각당사국이 이 회의에 참석한 사실은 미국이 제시한 이 안을 토의하는데 각국이 동의했다는 뜻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안은 지난 79년 이스라엘과 이집트간에 체결된 캠프데이비드협정에서 이미 제시된바 있다. 당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는 완전한 독립국건설이 목표임을 내세워 이를 거부했었다.
그러나 그동안 상황이 바뀐만큼 팔레스타인도 과도자치정부안을 현실적인 대안으로 고려하고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자치정부에 관한 협상이 시작될 경우 최대의 걸림돌은 이스라엘의 점령지 정착정책이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정착정책이 계속되는 한 자치정부수립은 불가능하다면서 이의 즉각적인 중단을 요구할 것이고,이스라엘은 유대인 거주지역을 제외한 일부 지역내에서의 자치만을 주장하며 정착정책을 계속할 것임을 분명히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함께 자치의 범위와 한계등도 큰 쟁점이 될 전망이다. 팔레스타인은 장차 독립국 건설을 목표로 점령지 전역에서의 완전한 자치,즉 경제 및 행정에 관한 권리를 비롯,자원배분 등에 있어서도 독자적 권리를 요구하는 것은 물론 점령지에서의 이스라엘군 철수내지 감축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중동평화회의 이모저모/이스라엘 아랍대표/악수거부 깊은골 확인/기자들 “PR전서 이스라엘 선승”/「팔」대표의 발언시간 싸고 신경전
○…이날 개막식의 하이라이트는 회의를 실질적으로 주도할 부시 미대통령의 연설이었다.
『우리는 이번 회의가 중동역사의 새로운 장을 여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이곳에 모였다』고 서두를 꺼낸 부시대통령은 약17분간에 걸쳐 회의에 임하는 미국의 기본입장과 구상을 설명했다.
프레스센터에 설치된 폐쇄회로를 통해 이 연설을 생중계로 지켜보고 있던 각국 기자들은 그의 연설이 5년간의 과도자치정부수립을 통한 팔레스타인문제 해결을 역설하는 대목에 이르자 「이번 회의의 결론은 이미 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표정들이었다.
○서로 아전인수식 해석
○…부시대통령의 개막연설을 놓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각각 아전인수식 해석에 열을 올려 미국의 입장에 거는 서로의 상반된 기대를 반영했다.
이날 이스라엘대표단은 그의 연설이 끝난 직후 성명을 발표,『안보가 확보돼야만 중동평화가 이룩될 수 있다』고 강조한 부분과 『당사자 직접 협상에 의해서만 평화가 이룩될 수 있다』고 말한 부분을 언급하면서 그의 연설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팔레스타인대표단의 하난 아시라위 대변인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는 발언은 매우 긍정적이고 중요한 부분』이라면서 『이스라엘은 점령지 반환을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회의참석 여부를 놓고 처음부터 논란을 벌였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은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이었다.
이스라엘은 요르단과 공동대표단을 구성,참가한 팔레스타인이 발언시간 등에서 다른 참가국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는 것에 항의. 사흘간 계속되는 1단계 개막총회에서 팔레스타인 대표에게도 똑같이 45분간의 기조연설이 허용된데 대해 이스라엘이 주최측인 미국에 강력히 이의를 제기했다.
또 이스라엘은 2단계 쌍무회의를 중동으로 옮겨 진행할 것을 고집하고 있는데 이는 이스라엘과 다른 아랍국들에서 번갈아 회의를 진행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주권국 지위를 아랍국들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분석했다.
○이집트 대표와만 인사
○…이스라엘 대표단은 회의장에서 이집트대표를 제외한 다른 아랍대표들과 악수는 고사하고 눈조차 맞추려 하지 않는등 해묵은 반감을 드러냈다.
대 아랍 강경노선을 보여온 이츠하크 샤미르총리를 비롯한 이스라엘 대표들은 이집트측과 간단히 인사를 나눴을 뿐 다른 아랍권 인사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이스라엘에 대한 아랍권의 태도 또한 냉랭하기 이를데 없었는데 시리아대표단장 파루크 알샤라외무장관은 이스라엘 인사들과 악수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팔레스타인측은 이스라엘 대표단이 기자회견에 효율적으로 임하고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미숙함을 번번히 연출하는등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대표단 대변인 하난 아시라위여사는 『이런 큰 행사에서 언론인들과 만나기는 난생 처음』이라고 강조하면서 팔레스타인측의 미숙함을 양해해 주도록 거듭 호소했다.
반면 이스라엘은 벤야민 네타나후 외무차관이 기자회견에서 직업 외교관다운 노련함을 과시하는등 대조를 보여 선전전에서는 이스라엘이 「선승」했다는 것이 기자들의 판단이었다.<마드리드 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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