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장길산』만화로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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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본격소설이 만화화돼 만화시장에 뛰어들었다. 도서출판 풀빛은 황석영씨의 대하소설 『장길산』을 만화화한 『마당그림 장길산』을 전20권으로 꾸미기로 하고 최근 전반부 l0권을 미리 펴냈고, 나머지 10권은 11월10일 출간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동서의 고전명작소설이나 외국의 인기소설이 만화화된 적은 있으나 현재 활동중인 국내작가의 소설이 만화화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본격 문학의 대중화에 한 전기로 기록될 것 같다. 집필에만 10년이 걸린 『장길산』은 조선조 숙종 연간의 유랑광대 장길산을 한 축으로 하고 당시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미륵신앙사건을 다른 한 축으로 하여 민중들의 삶의 모습을 형상화한 역작이다. 전국에 흩어진 민중의 삶의 실체를 캐기 위해 황씨는 『장길산』을 집필하며 광주·해남·제주 등지를 떠돌며 그곳 주민들과 어울려 그들의 삶과 정서의 체취를 익혔다.
『장길산』은 10년을 온통 쏟아 부은 작가정신에 의해 『남북한을 통틀어 민중사의 한 원형을 창출했다』는 평을 받으며 소설단의 최고권위인 중앙일보사제정 「유주현문학상」을 85년 수상했다. 또 인물들의 굵은 개성과 발빠른 사건전개로 소설읽기의 재미도 주어 84년 전10권으로 현암사에서 완간된 이 소설은 지금까지 20만질, 총2백만부이상이 말려나가 대중적 인기도 끌었다.
그러나 황씨는 『장길산』의 이 같은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이 작품이 만화화돼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익히길 바랐다. 문학작품이 「고전」이나 「문학사적 평가」로 남기보다는 영화·TV·연극·만화·마당놀이 등 문화 유통구조와 만나 「대중화」돼야한다는 것이 황씨가 줄곧 주장해 온 「문학대중화운동」이다.
이 같은 『장길산』의 대중화작업, 나아가 문학이라는 본격예술의 대중화를 위해 황씨는 85년 당시 선데이 서울 등 잡지에 시대극화 등을 연재중이던 만화가 백성민씨(43)에게 『장길산』을 극화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때부터 백씨는 다른 작업은 일절 중단하고 이 일에만 매달려 6년만에 완간을 눈앞에 두게된 것.
『사건 자체의 움직임이 강하고 인물들의 개성이 뚜렷한 시대활극이기에 만화가로서는 누구든 욕심내 볼만한 일이라 흔쾌히 수락했다』는 백씨는 이 작품의 올바른 극화를 위해 팀작업을 하지 않고 밑그림까지 직접 그렸다. 2백자 원고지 1만5천장에 달하는 소설을 1만6천여 컷에 집어넣어야 하기 때문에 필요한 대사 이외에는 삭제 할 수밖에 없었다고 백씨는 밝힌다.
그러나 삭제한 부분의 분위기를 그림으로 표현해야하고 선 하나 하나가 인물과 사건의 특성과 맞아 떨어져야 하기 때문에 팀작업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백씨가 이 작업에 6년이나 몰두한 것은 만화계의 다양성을 위해서다. 『연재물은 한 회 한 회 잔재미로 채우고 있고, 대본소 만화는 무협·갱만화로 그림이나 내용 모두 획일적인 만화시장의 다양성을 위해 이 일에 정식으로 매달렸다』고 백씨는 밝힌다.
영상 및 활자매체의 장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만화는 80년대 급팽창하게 된다. 아동오락물 위주에서 성인층까지 파고든 만화시장은 몇몇 전문교육만화나 정치·사회시사만화를 빼고는 저질 성인 오락만화가 대부분이어서 「만화문화」로까지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 평이다. 이 같은 상태에서 『마당그림 장길산』은 만화를 통한 문학의 대중화는 물론 만화의 문화화에 한 전기를 마련해 줄 것 같다.

<이경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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