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우리나라 교육史 희곡으로 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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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충섭(69)씨는 여느 촌로(村老)와 다를 게 없다. 크지는 않지만 3백여평의 텃밭에 푸성귀를 기르는 게 즐거움이다. 부인(하우필씨)은 집 근처에서 식당을 한다. 이름도 구수한 '하씨 추어탕'. 하지만 이런 李씨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우선 그는 '독특한 교수님'이다. 서울대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한 李씨는 1968년부터 30년간 부산교육대에서 교편을 잡았다. 99년엔 명예교수로 추대됐다. 하지만 대부분의 명예교수가 강의를 맡는 것과는 달리 李씨는 대학과의 모든 관계를 끊었다. 동창회에도 나가지 않는다.

이게 다가 아니다. 李씨를 진짜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일흔에 가까운 고령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희곡을 쓴다는 사실이다. 2일부터 6일까지 부산교대 참빛관에서 이 대학 출신의 교사극단 '한새벌'이 상연하는 '교사일지'는 李씨가 지난 8월 완성한 작품이다.

고교와 대학시절 40여편의 소설을 썼을 정도로 글쓰기에 재능이 있던 李씨였지만 처음부터 연극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가 연극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은 부산교대에서 연극부의 지도를 맡으면서부터. 연극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었던 데다 따로 배울 만한 곳도 마땅치 않아 李씨는 독학으로 연극에 관한 모든 것을 익혀야 했다. 그는 공부하면서 연극이란 장르에 매료됐다.

"연극 중에는 세상을 비판하는 것이 많아 내 취향에 맞더라고요. 그 재미에 흠뻑 빠져 30년을 살았지요. 그 세월 동안 한 일이 강단에 선 거랑 연극에 대해 고민한 것밖에 없어요. 어느 정도로 다른 일에 관심이 없었는가 하면 석.박사 학위도 딸 시간도 없었죠. 또 연극부 공연하고 매번 겹치는 바람에 아이들(2남1녀) 졸업식에도 못 갔어요.(웃음)"

뒤늦게 배운 연극 재미에 李씨는 밤새는 줄을 몰랐다고 했다. 매년 적게는 두편에서 많게는 네편의 연극을 연출했다. 연극부 출신 제자들이 모이자 73년엔 아예 '한새벌'을 창단했다. 이런 열정을 인정받아 91년엔 부산시 문화상을, 99년엔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기도 했다.

이번에 무대에 올린 '교사일기'는 일제 강점기부터 8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교육의 아픈 역사를 아홉개 장면으로 나눠 보여주는 작품으로 李씨가 10년여에 걸쳐 완성한 대작. 교육과 연극에 평생을 헌신한 李씨다운 작품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상연 소감을 묻자 李씨는 이렇게 답했다.

"이 노인이 총론을 썼으니 후배들이 우리 교육문제의 각론을 다룬 연극을 많이 만들어줬으면 합니다."

부산=정용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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