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걸린 高3 교실] '高 4년' 시대 오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소신지원을 해보고 안 되면 재수하지요."

2일 수능 점수를 받은 서울 S고 3학년 高모(18)군은 "당초 예상했던 점수"라며 "수시모집에서 합격하지 못했을 때부터 재수를 염두에 뒀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날 수능 성적을 받아든 일선 고교 3학년 교실에서는 학생들의 의기소침한 분위기가 역력했다. 올해 역시 재수생이 재학생 성적을 크게 앞지르자 어차피 재수나 반수(대학 재학 중 재도전)는 불가피하다는 자조 섞인 반응 일색이었다.

서울 광남고 3학년 成모 교사는 "(정시모집) 해보다가 안 되면 재수하겠다는 학생들이 상당히 많다"며 "내년에 수능이 대폭 바뀌는데도 재수하면 성적이 오른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고 걱정했다.

이에 반해 재수생들은 재학생들에 비해 얼굴이 밝은 편이었다. 재수생 尹모(19)군은 "어차피 1년 동안 수시를 포기하고 수능에만 집중하는 게 재수 아니냐"며 "지난해보다 10점 이상 점수가 올랐다"고 말했다.

이처럼 복수정답 시비, 수능 출제위원 자격논란 등 탈 많았던 올해 수능 채점 결과 '재수 불패(不敗)''고교 4년 과정(고교 3년+재수 1년)'현상이 고착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999학년도부터 재수생 성적이 재학생을 추월한 이후 점수 차는 갈수록 벌어져 올해 수능에서는 원점수를 기준으로 인문계는 27.3점, 자연계는 46.3점이나 차이가 났다.

서울 S고 심모군은 "성적이 좋은 재학생들은 이미 수시로 다 빠져나갔고 막판 정시까지 가겠다는 학생들은 재수생에게 밀리고…"라며 답답해 했다. 1학기부터 수능 시험 전까지 이뤄지는 수시모집 과정에서 합격자 소식이 나오다 보면 고3 교실은 면학 분위기를 잡기가 어렵고 어쩔 수 없이 재수까지 가게 된다는 게 재학생들의 불만이었다.

실제 수능 성적 발표 전인 지난달 30일 온라인 수능 교육사이트인 '스카이에듀'가 고3 학생 1천9백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체의 66%(1천2백54명)가 "재수할 생각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처럼 재수가 필수과정처럼 되다 보면 고교 교육이 파행으로 치닫는 것은 물론 막대한 사교육 부담이나 재수.반수 과정에서 빚어지는 국가인력 낭비도 갈수록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고 교육 전문가들은 말한다.

재수생 강세 현상으로 일선 고교의 진학지도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상위권 재학생은 수시모집에 이미 합격해 빠져나간 반면 정작 진학지도가 필요한 중상위권 이하 학생 수가 워낙 많아 교사들이 애로를 겪고 있는 것이다.

서울 상문고 3학년 한 담임교사는 "적성을 감안하면서도 재수생 강세를 피해 대학을 선택하는 입시 전략을 짜야 될 것 같다"며 난감해 했다.

강홍준 기자<kanghj@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