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 영웅'무슨 말 할까 노심초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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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난산 정치협상회의 의약분과위원.

중국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3월을 가장 싫어한다. 해마다 '양회(兩會)'가 열리기 때문이다. 양회는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와 정당.직능단체.민족 간 협의기구인 정치협상회의(政協)를 말한다. 올해 전인대는 5일 개막했고 정협은 3일 시작됐다.

정치 민주화를 요구하는 사회 각층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양회의 정부 감시.감독 기능은 최근 들어 뚜렷이 강화되고 있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도 이런 흐름에 힘을 실어줬다. 그는 4일 양회에 참석한 공무원들에게 "말은 적게 하고 민의를 많이 들어라"고 주문했다. 국민 대표들의 비판과 지적을 경청해 국정을 정화(淨化)하라고 당부한 것이다.

양회의 여러 대표 가운데 올해의 인물로는 중난산(鐘南山.70) 광저우(廣州) 호흡질환연구소 소장이 꼽힌다고 중국 언론은 전했다. 정협의 의약분과위 위원인 그는 중국에서 매우 유명하다. 2003년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발생 초기에 발원지인 광둥(廣東)에서 사스 발병 사실을 알리고 제압하는 데 큰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그는 '사스 영웅'이란 칭호도 얻었다. 위생부 관리들은 그를 두려워하기까지 한다. 그의 지적 몇 마디에 이미 몇 명이 옷을 벗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정협 때 그는 "한 가지 약에 수십 개의 다른 이름이 붙는다. 같은 약인데도 값 차이가 최고 200배나 난다. 45년간 의료 현장을 지킨 나도 약방에만 들어서면 머리가 어지럽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라고 질타했다. 그로부터 5개월 뒤 정샤오위(鄭篠萸) 식품의약국 국장을 비롯한 간부 5명이 한꺼번에 면직됐다. 약품 생산 허가 과정에 검은돈이 오간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사람뿐 아니라 제도도 바뀌었다. 약품 생산 허가권이 중앙정부로 일원화됐다. 생산현장 감독제와 사회단체가 직접 약품 생산을 감독하는 제도도 도입됐다. 그의 한마디가 가져온 변화다. 그의 이런 기질은 사스 창궐 때 그대로 드러났다. 사스가 막 퍼져나가던 2003년 2월 18일 광둥성 위생청은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이 자리에서 위생청의 한 간부는 "사망 환자의 시신을 부검한 결과 일반적인 폐렴에 의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다른 참석자들은 모두 이에 동의했다. 그러나 중 소장은 "병증을 분석해 보면 변종 바이러스에 의한 폐렴이 사인인 것 같다"고 주장했다. 한 달 뒤 광둥성 정부는 그의 견해를 받아들였다. 자연 변종 바이러스에 맞는 적절한 치료법이 채택됐다. 당시 현장을 참관했던 세계보건기구(WHO)의 한 관계자는 "그의 정확한 진단이 없었다면 사망자(349명)는 몇 배나 늘어났을 것"이라며 "중 소장의 치료법은 다른 나라들에도 큰 참고가 됐다"고 평가했다.

올해 양회에서도 그는 따끔한 소리를 쏟아냈다. 우선 식품의약국장의 권한이 지나치게 크다고 지적했다. 국장을 감독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생산적인 조직 운영과 감독체계의 효율성을 높이려면 아직 손봐야 할 일이 많다고 비판했다. 식품의약국의 한 관리는"올해는 무사히 넘어갔으면 좋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베이징= 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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