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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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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살다 보면 좋은 의도에서 한 일이 뜻하지 않게 나쁜 결과를 빚는 경우가 종종 있다. 환자의 심적 고통을 덜어준다며 병의 상태를 제대로 알리지 않으면 적절한 치료에 대한 판단을 그르칠 수 있다. 고통을 덜어주려는 좋은 의도가 오히려 환자의 고통을 늘리고, 자칫하면 치료 시기를 놓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선의(善意)는 말 그대로 '좋은 뜻'이다. 남을 배려하고 도와주려는 착한 마음이다. 그러나 선의만으로는 의도한 결과를 보장할 수 없다. 실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한 채 베푸는 맹목적인 선의는 효과도 없을 뿐더러 위험하기까지 하다. 선의가 잘못된 수단과 결합하면 차라리 애초부터 선의가 없느니만 못하다. 특히 선의가 정부나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선심성 정책으로 표출되면 최악의 역효과를 빚는다.

저임 근로자를 보호하자는 취지로 만든 최저임금제는 막상 보호하려는 최하층 미숙련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줄이는 효과를 낳는다. 임금을 올려주려다 일자리 자체를 빼앗는 것이다. 영세상인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한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임대기간 5년을 보장하고 임대료 인상률을 12%로 묶었다. 결과는 5년치 임대료가 한꺼번에 올라 영세상인들의 부담이 가중됐고, 이를 감당하지 못한 상인들은 거리로 나앉은 것이다. 재도입이 추진되고 있는 이자제한법도 마찬가지다. 서민들에게 고금리 부담을 덜어주자는 좋은 뜻에도 불구하고, 현실경제를 도외시한 채 이자율 상한을 정할 경우 최하층 서민들은 급전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제도권 금융회사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사금융의 기회마저 막는 처사다.

저임 근로자를 쓰는 고용주나 영세상인에게 임대한 건물주, 서민들에게 고리채를 놓는 사채업자들이 선의를 베풀면 문제가 쉽게 풀릴 것 같지만 이를 법으로 강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부나 정치인들이 모자라는 임금.임대료.이자를 대신 내줄 생각이 없다면 말이다. 정치인들이 자신의 선의를 앞세워 다른 사람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위선이다.

법률 용어로 '선의'는 도덕적 평가와 관계없이 단지 '어떤 사실을 몰랐다'는 뜻으로 쓰인다. '선의의 피해자'는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태에서 피해를 본 사람이다. '몰랐기 때문에' 법적으로 보호받는다. 그러나 정책을 다루는 정치인이나 관료가 선의를 내세워 결과를 몰랐다고 강변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선의의 가해자'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