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이창호 12연패 막아라" 192명의 기사가 나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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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9단의 힘과 도전 세력의 힘이 점차 팽팽해지면서 한국 바둑이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 왕위전에서는 이영구 6단이 이창호 9단에게 맞섰지만 3대 0으로 패했다.

왕위전 11연패. 이창호 9단이 이어가고 있는 놀라운 기록이다. 이창호 9단은 도전 세력이 점자 거세지고 있는 올해 또다시 12연패를 달성하며 자신의 철옹성을 지켜낼 것인가.

41기 KT배 왕위전이 5일 개막된다. 참가기사는 192명. 이 중 단 한명이 도전자로 선발돼 이창호 9단과 우승컵을 놓고 최후의 일전을 겨루게 된다. 2005년 이후 도전자 선발 과정이 토너먼트로 바뀌면서 강자들이 탈락하는 이변은 더욱 잦아졌다. 그 험악한 과정을 끝까지 통과해 도전자가 되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운데 최후에 '이창호'라는 마지막 관문을 또 넘어야 비로소 왕위 타이틀을 따낼 수 있다.

강자들끼리 치고받지 않을 수 없는 이런 토너먼트 방식은 타이틀 방어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측면이 있다. 2005년엔 그래서 옥득진 2단이란 무명기사가 도전권을 얻었고(이창호 3대 1 승리) 지난해엔 신예 강호 이영구 6단이 도전자가 됐다(이창호 3대 0 승리). 이세돌 9단, 최철한 9단, 박영훈 9단 등 강력한 세력들은 모두 신예들의 한칼을 맞고 중도 탈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최근엔 이창호 9단도 많이 흔들리고 있고 도전 세력은 점점 강해지고 있어 만약 상승세의 이세돌 9단이 도전권을 따낸다면 근래 보기 드문 빅 매치가 펼쳐질 가능성이 있다.

3개월 간의 예선전이 끝나면 도전기 첫판이 5월 23일 중국 쓰촨(四川)성의 수도인 청두(成都)에서 벌어진다. 쓰촨성에서 지난해 일찌감치 왕위전 도전기를 유치한 것도 이창호 9단이란 존재 때문일 것이다. 삼성화재배 결승전 패배 등 세계무대에서 잇따라 무너지는 듯하다가도 지난달 농심배에서 중국 1,2위를 연파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던 이창호. 그의 행보는 한국에서보다도 오히려 중국에서 더 관심이 높다.

66년 중앙일보 창간과 더불어 시작했던 왕위전은 3년전 KT배 왕위전으로 이름을 바꾸며 41년째 이어오고 있다. 그 긴 세월 동안 정상을 밟았던 기사는 김인 9단, 하찬석 9단, 조훈현 9단, 서봉수 9단, 유창혁 9단, 이창호 9단 등 6명뿐이다. 김인 9단은 1회 대회부터 7연패를 이뤘고 조훈현 9단은 82~90년까지 8연패를 기록했다. 우승 횟수를 보면 김인(8회), 조훈현(13회), 이창호(12회) 등 3인이 33회나 우승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왕위전은 이처럼 김인-조훈현-이창호로 이어지는 한국 바둑사의 일인자 계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창호 다음의 우승자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은 새로운 일인자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최강의 적수라 할 이세돌 9단은 2001년과 2004년 두 번 도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그러나 팬들은 이창호-이세돌의 세번째 대결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타고난 집중력과 수읽기를 바탕으로 점차 절정의 기량을 보여주고 있는 이세돌 9단과 왕위 12연패를 노리는 이창호 9단 간의 불꽃 뛰는 명승부를 벌써부터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왕위전 우승상금은 4800만원.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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