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바이올린 페스티벌' 온 세계 유명 교수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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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서울 국제 바이올린 페스티벌에 참석한 교수들. 왼쪽부터 빅토르 단첸코, 에두아르드 그라치, 미하엘라 마틴, 이고르 오짐, 크시슈토프 베그르진, 김남윤 교수.

"유럽 학생들은 열 번 말해야 알아듣지만 한국 학생들은 한번에 음악을 완성하더군요."

모스크바에서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22)씨를 가르치고 있는 모스크바 음악원의 에두아르드 그라치(77) 교수가 한국에서 파악한 학생들의 특징이다. 그는 "머리가 좋고 빨리 성장해야 한다는 욕심이 강하기 때문"이라는 분석까지 덧붙였다. 러시아 최고의 음악교수로 꼽히는 그라치 교수가 한국을 찾은 이유는 지난달 28일 끝난 '서울 국제 바이올린 페스티벌(2월 22일 시작)'때문이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김남윤(58) 교수의 초청으로 내한한 외국인 교수는 모두 5명. 그라치 교수 외에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의 이고르 오짐(76) 교수,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오이스트라흐의 제자인 커티스 음악원.피바디 음대 빅토르 단첸코(70) 교수, 하노버 음대의 크시슈토프 베그르진(54) 교수, 쾰른 음대 미하엘라 마틴(49) 교수다. 모두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음악학교에서 활약하는 교수들이다.

이들 명조련사로부터 일주일 동안 75명의 학생이 레슨을 받았다. 400여 명의 청강생도 페스티벌에 다녀갔다. 교수들은 "페스티벌에 참가한 학생 중 눈에 띄는 수준의 학생들이 너무 많아 깜짝 놀랐다"고 입을 모았다. 오짐 교수 역시 "한국의 경제가 빨리 성장한 것이 음악학도들의 성장속도에도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며 웃었다.

이번 페스티벌에 참가한 교수들은 모두 자국에서 한국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다. 단첸코 교수의 경우 30년 전부터 한국 바이올리니스트들을 가르쳤다. 그는 10명이 넘는 한국 학생의 이름을 열거하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현지에 찾아가도 레슨 받기 힘든 선생님들이 직접 찾아와서 지도한 셈"이라며 "학생들의 호응이 좋아 내년에도 개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음악 공부 제대로 하려면=이들은 한국 학생들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크시슈토프 베그르진 교수는 "다른 문화권과 자주 접촉하라"고 충고했다. 그는 "바르톡을 연주하려면 헝가리어를 알아야 하는 식이기 때문에 음악하는 사람들은 다른 나라의 언어.문화를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테크닉에 치중하는 자세도 지적했다. 그라치 교수는 "한국 학생만의 특징은 아니지만 최근 음악을 공부하는 아이들이 '무조건 빠르게' 연주하는 것을 능사로 안다"고 말했다.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선에서, 음악적 표현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의 템포를 선택하라는 설명이다.

기본기 연습은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숙명일 터. 단첸코 교수는 페스티벌 중 15차례의 공개레슨에서 학생들에게 "음계.화음 등 손가락 훈련을 매일 하지 않으면 훌륭한 음악성도 무용지물"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자신만의 음악 색깔을 찾는 노력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게 이들의 공통적인 지적이었다. 그라치 교수는 이번 공개레슨에서 "이 부분을 더 한음 한음 강조하는 연주가 나는 더 좋게 들리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고 물어본 후 의견을 교환하는 식으로 레슨을 진행했다. 학생이 더 좋은 의견을 내면 교수도 수긍했다. "아무리 훌륭한 선생님에게 배우더라도 '선생님 판박이' 연주자는 쓸모가 없다"는 뜻이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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