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명문대학원 2년새 24명 합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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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대 전자공학과 학생들이 ‘삼류 지방대’생 콤플렉스를 벗어던지고 미국 명문대학원생으로 거듭나도록 조련한 조명석 교수(下)와 일리노이 대학원에 합격한 이충헌씨.[사진=김성룡 기자]

포스텍 수석 합격.졸업자도 의대에 편입할 정도로 이공계 기피 현상이 극에 달한 요즘이다.

그런데 수능 배치표 아래쪽에 위치한, 정원 80명의 강릉대 전자공학과에서 '일을 냈다'. 2005년 10명, 2006년 14명이 UCLA.남가주대.퍼듀대.워싱턴대.콜로라도대.플로리다대.매사추세츠대.텍사스대.아이오와대.델라웨어대 등 미국 상위 100위권에 드는 명문대학원에 합격했다.

1997년 1호 유학생을 낸 지 10년째, 이 학과 조명석(53) 교수의 지도 덕분이다. 제자를 향한 그의 열정과 학문적 리더십은 지방대를, 공대를 보는 세간의 인식을 통쾌하게 깨뜨렸다. 이들의 대담한 도전과 유쾌한 반란을 그린 책 '강릉대 아이들, 미국 명문 대학원을 점령하다'(김영사)의 출간을 계기로 조 교수와 최근 일리노이 공과대학원에 합격한 이 학과 이충헌(27)씨를 만났다.

처음엔 명색이 국립대이지만 웬만하면 '미달'이었기에 원서만 내면 합격할 수 있는 학과였다. 1991년 학과 설립과 함께 부임한 조 교수에겐 황량한 하드웨어보다 '대충 놀다 졸업장이나 따야지'라며 포기한 아이들의 상태가 더욱 절망적이었다. 옛 직장(현대전자)에 읍소해 '학벌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공정하게만 뽑아 달라'며 아이들을 한둘씩 입사시키길 몇 해.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취업문은 더욱 굳게 닫혔다. 실력과 간판이 모두 필요했다.

그러나 다들 유학이란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나 부잣집 자제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다. 의지가 굳은 복학생 하나를 집중 지도해 처음으로 미국 워싱턴 대학원에 진학시킨 것이 1997년. 그는 지금 미국 인텔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그리고 2000.2002년에 한 명씩, 2003년엔 두 명이 한꺼번에 합격했다. 석.박사 과정을 마친 이들 앞엔 삼성전자 등 굴지의 대기업이 줄을 대고 기다렸다.

선배들의 성공을 본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충헌씨는 "새벽 2시까지 공부하는 건 기본이었고, 시험 본 뒤 친구들과 술을 마셔도 숙제는 해놓고 가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수업은 외국 대학과 똑같이 원서로 진행했다. 수업 시간을 뺏지 않기 위해 중간.기말 고사는 저녁 7시 이후에 치렀다. 엄청난 학업량을 견디다 못해 전과한 이도 상당수지만, 견뎌낸 학생들에겐 고스란히 실력으로 남았다. 이씨는 "전국 전공경시대회를 한다면 서울대나 연.고대에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방학에는 학과에 개설한 영어코스에서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공부했다. 몇 번의 방학을 거치자 토익 200점대이던 학생도 미국 학교에 합격할 수 있는 점수(토플 PBT 기준 550점대)를 얻었다.

조 교수는 "공부하는 방법과 재미를 몰랐을 뿐, 수능 성적이 낮은 아이들에게도 잠재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공고 출신 두 명도 미국 대학원에 합격했다고 덧붙였다.

"국내 명문대에 못 가면 전공과 관계없이 공무원 시험 등에만 몰리는 건 국가적 낭비입니다. 영어와 전공 실력만 갖춘다면 글로벌 인재로 자라나 세계 과학계를 주름잡을 수 있는데 말입니다."

다만 2006년 입학 허가를 받은 14명 중 절반가량이 학비 때문에 유학을 포기했다. 조 교수는 "유학비 대출 제도 같은 게 마련되면 좋겠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헛된 노력은 아니었다. 합격 경험은 아이들에게 무한한 자신감을 심어 줬다. 유학을 준비하느라 전공.영어 실력도 저절로 갖췄기에 취업문도 손쉽게 열 수 있었다. 조 교수는 학생들에게 늘 '두 번째 기회(Second Chance)'는 놓치지 말라고 강조한다. 대학 교육의 역할도 강조했다.

"대학은 우수한 신입생을 뽑는 일에만 열중해서는 안 됩니다. 대학입시란 관문에서 좌절하고 열패감을 겪은 젊은이들도 두 번째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대학과 교수와 학생 모두 노력해야 합니다."

글=이경희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조명석 교수는=연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대전자(현 하이닉스) 책임연구원으로 반도체 개발에 참여했던 그는 91년 강릉대에 신설된 반도체공학과(현 전자공학과)의 유일한 교수로 부임했다. 지방대생은 이력서도 못 내미는 학벌 위주의 세태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 명문대학원 진학' 프로젝트를 가동, 97년부터 10년간 31명을 미국 대학원에 합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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