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4관왕 '디파티드' 기획한 한국계 로이 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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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작품.감독.각색.편집상 4관왕을 차지한 '디파티드'의 영광에는 한국계 제작자 로이 리(38.사진)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그가 2003년 홍콩 영화 '무간도'를 보고 리메이크를 기획하지 않았다면 '디파티드'는 탄생조차 할 수 없었다. '아시아 영화 리메이크의 귀재'로 통하는 그를 26일 시상식 직후 만났다. 할리우드의 공룡급 배급사인 워너브러더스와 손잡고 '디파티드' 제작을 주도한 그는 책임 프로듀서 5명 중 첫째로 이름을 올렸다.

로이 리는 1969년 뉴욕에서 이민 1세인 의사 아버지와 교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조지워싱턴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아메리칸대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 출신이다. 2001년 친구 더그 데이비슨과 함께 버티고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한 뒤 '링' '그루지' '레이크 하우스' 등 아시아 영화의 '할리우드 버전'을 만들었다.

-작품상 수상을 축하한다.

"아카데미상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작품상까지는 기대하지 않았다. 아시아 영화 리메이크가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이변이라고 생각했다. 아카데미상에서 비주류로 취급되는 범죄영화가 작품상을 받는 일은 70년대 '대부' 이후 거의 없었다."

-수상 비결이 있다면.

"원작이 워낙 강력했고, 미국 실정에 맞춘 각색도 훌륭했다. 스코세이지라는 명장과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등 스타급 배우를 만난 게 주효했다. '무간도'를 모르는 미국 관객 대부분은 처음부터 미국 영화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캐스팅은 어떻게 했나.

"원래 다른 감독에게 연출을 맡기려고 했다. 그는 리메이크라는 점을 꺼림칙하게 여겼다. 둘째로 스코세이지에게 시나리오를 보냈더니 '좋다'는 연락을 해왔다. 배우들은 오히려 쉬웠다. 감독의 명성 덕분에 대부분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하겠다'고 했다."

-아시아 영화에 영향을 줄까.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할리우드가 아시아에 훨씬 개방적이 된 것을 느꼈다. 이야기가 훌륭하면 어떤 문화권에서도 통할 수 있다. 새로운 리메이크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예전보다 훨씬 쉽게 스타급 배우.감독과 접촉하고 있다."

-속편을 기획 중이라던데.

"시나리오 작업 중이다. '무간도2'는 전편보다 앞선 시기를 다뤘지만 '디파티드2'는 전편 다음의 얘기다. 1편의 주요 캐릭터 중 마크 월버그만 살아남았으므로 그가 중심이 될 것이다."

-한국 영화도 다루지 않나.

"'엽기적인 그녀'와 '중독'의 리메이크는 촬영이 끝났다. 현재 후반 작업 중이다. 1500만 달러가 들어간 '엽기적인 그녀'의 경우 배경만 뉴욕이고 구체적 에피소드는 거의 원작 그대로다. 연말 개봉될 예정이다. '중독'은 내년 선댄스영화제를 겨냥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주정완 기자

◆영화제작=영화사는 크게 투자.배급사와 제작사로 양분된다. 투자.배급사는 영화 제작비를 대며 완성된 영화를 극장에 배급한다. 제작사는 실제 영화 콘텐트를 생산하는 회사다. 로이 리는 '디파티드'에서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executive producer)로 참여했다.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는 기획부터 투자까지 총괄하는 자리다. 특정 회사에 소속되거나 프리랜서로 활동한다. 촬영 현장을 지휘하는 사람은 프로듀서(producer)로 불린다. '디파티드'는 로이 리의 버티고 엔터테인먼트 등 총 5개 회사가 공동 제작했다. 아카데미 작품상 시상식 무대에는 공동제작사의 하나인 이니셜 엔터테인먼트의 그래엄 킹 대표가 프로듀서 자격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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