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문제는 국가경제의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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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27일 오후 서울 장충동 분도빌딩 5층 세미나실. '이대로 가면 현대자동차는 망한다'는 큼지막한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미국에서 현대차 재고량이 10만 대가 넘어섰다'는 본지 기사 등을 보고 "이대로 가다가는 현대차가 돌이킬 수 없는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고 생각한 노사관계선진화운동본부가 긴급하게 마련한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박세일 서울대 교수, 심갑보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부회장 등이 회의장에 들어섰다.

노사관계선진화운동본부는 지난달 23일 법과 원칙, 대화와 타협에 기초한 노사관계를 정립하는 운동을 벌인다는 취지로 출범했으며, 김대모 중앙대 교수와 최승부 전 노동부 차관 등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이날 세미나 참석자들은 법을 지키지 않고 원칙 없이 진행돼 온 노사관계를 현대차 위기의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노조의 '떼쓰기식' 파업 행태도 문제지만 이를 묵인해 준 회사 측 책임도 크다는 공통된 진단이 나왔다. 노조에는 이기주의적이고 불법적인 파업을 자제해줄 것을, 회사 측에는 투명 경영을 주문하는 말들이 쏟아졌다. 다음은 세미나 참석자들의 발언 요지.

◆박건우 전 한국도요타 회장=현대차는 ▶기술경쟁력 약화 ▶노조의 이기주의적 행태 ▶최고경영자의 경영능력 문제 등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

회사 측이 매년 7~9% 정도 임금을 올리고 있는데도 불법 파업이 일어나는 곳은 전 세계에서 현대차뿐이다. 노조의 불법 행위를 단호하게 대처할 수 있는 자신감은 경영진의 합리적이고 투명한 경영에서 나온다. 이를 위해 ▶각종 위원회와 이사회 등 의사결정기구가 합리적으로 작동해야 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외부 전문경영인을 영입하며 ▶사외이사가 경영을 감시하는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심갑보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잦은 파업으로 인해 갈 길을 잃었던 GM의 잘못된 선례를 현대차가 따르고 있는 것 같다. 기업가들은 외국인 투자 유치의 가장 큰 걸림돌로 강성 노조를 지적하고 있다.

노사 분규 때 사용자는 양보해서는 안 될 부분을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지켜야 한다. 눈앞에 닥친 분규를 막아 보자고 뒷돈을 주는 등의 행위가 노사 문제를 악화시킨다. 정부도 이런 행위를 하는 사용자와 근로자 양측 모두 단호히 처벌해야 한다.

◆이광남 한국노총 지도위원=현대차의 파업은 현대차 노사 간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제적 문제다. 국민이 바라지 않는 운동은 노동운동이 아니다. 무조건 파업하고 기업과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것이 노동운동의 목적은 아니다. 임금 인상이나 보너스에 집착하다 보면 일자리까지 잃게 될 수 있다는 점을 현대차 노조는 명심해야 한다.

◆서경석 목사=현대차 경영진은 올 초 성과급 문제를 대폭 양보함으로써 합리적 노조가 등장하는 것을 막았다. 적대적 노동운동이 계속되도록 회사가 방치한 것이다. 현대차 불매운동은 이에 대한 국민의 비판이다. 노동운동을 노조에만 맡겨서는 안 되는 시기가 왔다. 회사가 원칙을 따라주면 합리적 노조가 등장할 수 있다.

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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