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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살 곽경해씨 가족] "일자리 잡았다 좋아 하시더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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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40여년 가까이 공사현장을 누비고 다니다, 고향으로 돌아와 집까지 새로 짓고 편하게 살 수 있게 됐나 싶더니만…."

이라크에서 총격을 받고 숨진 곽경해(61)씨의 대전시 유성구 방동 집은 1일 오전 일찍부터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가족과 친지들의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이날 새벽 일찍부터 보도진들이 郭씨 집을 찾았지만, 가족들은 "아직 공식 통보를 받지 않아 말할 입장이 아니다"며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들이었다.

그러나 오후 2시쯤 정부가 사망 소식을 공식 발표하자 오열했다. 특히 郭씨는 이라크에 도착한 뒤 가족에게 안부 전화를 한번도 걸지 않아 가족들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부인 임귀단(56)씨는 "젊은이도 일하기 어려운 전쟁터에 가지 말라고 극구 말려봤지만 소용이 없었다"며 말끝을 잇지 못했다.

유성이 고향인 郭씨는 20세 때부터 전국의 공사현장을 쫓아다니며 전기공사 기술을 습득, 대전.충청지역 최고의 전기 송.배전 기술자로 꼽혀왔다.

郭씨는 60세가 넘으면서 현장에서 일을 하기 어렵게 되자 여생을 고향 마을에서 보내기로 하고 평생 모은 1억여원의 돈으로 지난해 7월 부지(1백여평)를 구입, 단층짜리 집을 직접 지었다.

이 집에서 부인과 둘째 아들 승호(31).딸 정자(29)씨와 함께 살아왔다.

충남 서산에 사는 큰아들 민호(33.교육공무원)씨는 "아버지가 현지로 떠나기 하루 전인 지난달 27일 대전에서 만나뵈었는데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며 울먹였다.

그는 "'국내에 일자리가 없던 차에 외국에서 일을 하게 돼 그나마 운이 좋은 것 같다. 내년 초 건강한 모습으로 귀국할 수 있을 것'이라며 웃는 모습으로 떠나셨다"고 말했다.

이웃 주민 이원배(73)씨는 "법이 없어도 살 수 있을 정도로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이었다"며 "소일거리가 없어 심심하다며 일거리를 찾아 전쟁터까지 간 것이 화를 부른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가족들은 郭씨의 팔순 노모(83)에게 아들의 사망소식을 알리지 않고 있다.

대전=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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