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명의 허준의 묘소 성역화를-이양재 <허준 기념사업회 준비위 부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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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9년에 걸친 추적 끝에 지난달27일 경성 허준의 것으로 보이는 묘소를 민통선 지역에서 발견, 30일 허준의 묘소로 최종 확인했다. l945년 국토가 분할된 이후로는 누구도 돌보는 사람이 없어 46년간 방치돼 뫘기에 이 상태로의 보존도 고맙고 감격에 겨웠다.
의성 허준은 한의학의 경전이라 할 수 있는 동의보감을 편찬했는데 동의보감의 해외판은 이미 2백67년전에 일본에서 간행된 이래 중국에서도 여러 차례 간행되었으며 최근에는 독일어판·영어판도 출판되었다. 이는 동의보감이 국가와 시대를 초월한 세계적 저술이라는 사실을 대변해준다.
한국인의 저술로 세계성을 갖춘 서적이 몇 권이나 있겠는가. 동의보감 초판본은 국보보다 한 차원 높은 세계적 보물로 마땅히 평가돼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 민족의 전래 과학은 조선이 일본에 강제 점령되면서 맥이 끊어졌지만 우리의 전래의학(한의학 또는 동의학)은 생계수단으로 이어져 올 수가 있었으므로 비교적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다. 따라서 의성 허준을 민족적 차원에서 세계적인 과학자로 재조명해야 한다고 믿는다.
의성 허준은 서자출신 중인으로 당시 사회의 인습·제도를 넘어선 인간 승리자다. 의성 허준을 현창하는 일은 자신이 처한 환경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줄 것이다. 그러므로 민족의 교육적 차원에서 의성 허준의 묘소를 성역화 하여 기려야 한다고 믿는다.
충무공의 업적은 풍전등화의 나라를 구한 것이지만 의성 허준은 동의보감을 통하여 민족의 생명을 수백 년간 돌보아 왔고 앞으로도 의성 허준의 영향력은 계속될 것으로 본다. 의성 허준의 위업은 충무공의 업적에 비교하여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믿는다. 5·16 군사정권은 정치적 목적으로 임란의 명장 충무공과 10만 양법론의 율곡을 현창하여 성역화 하였다. 민주화 시대에 의성 허준을 기리는 사업은 민간 차원에서부터 불붙기를 기대한다.
이제 의성 허준의 묘소를 찾아 놓은 당사자의 입장에서 하나의 무거운 의무가 어깨에 짊어져 옴을 느끼게 된다. 이 짐을 함께 질 모든 계층의 사람들, 특히 서민들의 힘을 모아 봉건사회가 주는 아픔을 수백 년간 자손 대대로 겪어오면서도 모든 민중들에게 사람의 인술로 갚은 의성 허준을 기억하는 일을 성취토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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