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전작권 전환 후의 한·미 관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미국의 이러한 '양보 외교'는 공화당의 중간선거 패배,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사임, 이라크 사태 및 이란 핵 문제 악화 등에 직접적 원인이 있다. 미국이 한반도 정책에 관한 '새로운 구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한국 내 반미감정 가능성 차단이라는 정책적 고려가 강하게 작용했다는 점이다. 미국은 2007년 한국 대선의 해를 맞이해 대북 강경기조의 지속으로 인한 반발 가능성을 제거하고, '전작권 2009년 조기 반환'을 고수할 경우 주한미군 기지의 실제 이전 시기인 2012년과의 차이로 인한 반미감정 고조 가능성을 의식했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전작권 전환 시기가 2012년으로 확정된 이상 정부는 향후 전환 여건을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아울러 한.미 관계를 '과거청산'이 아닌 '미래지향'의 관점에서 설계해야 한다. 국내 일각에서 나올지 모르는 "전작권 전환 일정이 잡혔으니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하고, '군사주권'을 찾아왔으니 '민족공조'를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박차를 가하자"는 주장을 경계해야 한다.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그 결과로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완성하는 해법을 추구해야 한다.

현재 미국은 반테러.반확산 정책의 효과적인 추진을 위해 테러 및 대량살상무기 확산 가능성이 큰 지역으로 해외주둔 미군을 재배치하고 있다. 이는 서유럽 중심의 '전통적 동맹체제'로부터 동유럽.중앙아시아.중동지역을 중심으로 한 '신동맹체제'로의 변화를 뜻한다. 아시아.태평양 지역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은 미.일 동맹과 한.미 동맹 같은 전통적 안보동맹이 '포괄적 위협'에 대처하는 방향으로 그 기능을 조정해야 상호 이익이 된다고 본다. 이러한 '신동맹체제'는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바탕을 둔다. 이제 '인계철선'은 병력의 수와 기지의 위치에서가 아니라 미국과 동맹국들 간의 '신뢰'와 동맹의 성격에 바탕을 두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한.미 신동맹체제의 방향은 명확하다. 우리는 북한이라는 전통적 위협에 대처함과 동시에 21세기적 새로운 안보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한.미 동맹으로 나아가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공유하면서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진정한 파트너, 즉 '신맹(信盟)'이 되기 위해 우리의 전략적 시야를 한반도로부터 아태지역, 그리고 세계로 넓혀야 한다. 전략적 사고의 폭을 한반도에만 고정시킬 경우 미군은 전작권 반환 후 '한국 방위의 한국화'를 위해 보조적인 역할을 하게 되므로 결국 한반도에서 철수해야만 한다. 그러나 사고의 폭을 아태지역과 세계로 확대시키면 미군은 평택 지역에 남아 역내 안정과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군대로 지속 주둔하게 된다.

2005년 한.미 양국이 합의한 한.미 동맹의 비전, 즉 '포괄동맹'의 모습에 대해 한.미가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계.지역.한반도 차원에서 한.미 양국이 정치.군사.경제적으로 어떻게 협력해 나갈 것인가에 관해 합의해야 한다. 동맹의 비전을 구체화해 가는 가운데 2012년 전까지 북핵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한.미 양국은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북한의 위협이 더욱 고조될 경우에 대비한 '전작권 비상대책'도 마련해 놓아야 할 것이다. '정치 과잉'으로 인해 우리의 안보가 희생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김성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