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해외칼럼

농업에 부는 무역자유화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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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제무역에서 가장 왜곡된 분야인 농업은 자유무역과 이를 통한 빈곤국가 지원을 목표로 하는 도하 라운드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어 왔다.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회원국들이 2004년 자국 농민을 지원하는 데 쓴 돈이, 같은 해 개발도상국 원조에 들인 돈의 네 배를 넘을 정도로 많다. 2000년 세계은행의 평가에 따르면 OECD 회원국들의 보호주의 때문에 개발도상국들이 입는 손해가 매년 200억 달러에 이른다.

왜 각국 정부는 유독 농업부문을 국제시장의 경쟁 원칙에서 따로 분리해 생각하고, 평소 자유무역을 옹호하던 정치인들조차 이 부문에서만은 보호주의자가 되는 걸까. 이는 농업의 두 가지 특수성 때문이다.

첫째, 농민들은 응집력이 강한 데다 농업정책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선거에서 몰표를 던지는 경향이 있다. 이는 도시민들에게선 찾기 힘든, 농업 지역만의 특성이다.

둘째, 어느 나라든 '식량은 경쟁에 내맡길 상품이 아니다'는 논리가 강하다. 이런 맥락에서 농업은 흔히 군대에 비유된다. 어떤 정부도 자국 안보를 신뢰할 수 없는 외국인에게 맡기지 않듯이 식량 공급도 외국에 의존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일본은 오랫동안 농업보호주의를 추구해온 대표적인 나라다. 농민들은 정치적으로 잘 조직돼 있고, 농림수산성은 농업보호주의를 강력히 옹호해 왔다. 제2차 세계대전과 그 이후의 식량부족 사태에 대한 아픈 기억 때문에 일본에서 '식량안보'라는 구호는 상당한 파괴력이 있다. 그러나 이런 일본에서도 이제는 농업 자유화의 씨앗이 뿌려지고 있다. 인구 감소로 농촌지역 유권자 수가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에서 값싼 수입 농산물을 선호하는 도시민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인구감소 문제는 농촌지역에서 특히 심각하다. 농민의 평균 연령이 기업체 퇴직자 연령을 넘어설 정도다. 최근 어떤 농촌 마을은 젊은 노동력을 확보할 방도가 없자 농사를 중단하고 토지 전체를 폐기물 처리회사에 팔아버리기도 했다.

수십 년간에 걸친 정부의 막대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농업은 농민들을 먹여 살리기조차 힘든 실정이다. 식량 자급률은 28% 선에 머물고 있다. 농업.어업.임업의 비중은 전체 경제 규모의 2%도 안 되며, 농업 종사자는 전체 노동자의 4% 이하다.

농촌 인구의 급속한 감소와 노령화는 일본 정부로 하여금 농업에 대한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게 하고 있다. 농림수산성은 오랫동안 소중하게 지켜온 식량자급 정책을 최근 포기했다. 식량자급 비율을 2015년까지 45%로 낮추고, 대신 자유무역협정(FTA)과 수입원 다변화를 통해 식량 수입의 안정성을 강화하기로 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농림수산성의 개혁을 지원하면서 태국.호주 등 식량 수출국과의 자유무역 협상에 적극 나서고 있다. 식량 수출국들은 일본이 서둘러 수입 문호를 개방하지 않으면 중국처럼 급성장하는 국가에 식량 공급원을 빼앗기고 말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러한 논리는 중국의 부상을 우려하는 일본인들에게 상당히 먹혀들고 있다.

일본은 인구 감소 속도에서 전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다. 프랑스와 한국 같은 전통적 농업보호국의 상황도 비슷하다. 프랑스는 20년 전과 비교할 때 농민 수가 절반 정도로 줄었다. 선진국들이 인구 감소와 고령화에 떠밀려 마침내 농업 부문에서도 자유무역의 옹호자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정리=유철종 기자

맬컴 쿡 호주 로위 국제정책연구소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