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단 공무원에겐 이래도 되나”(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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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공무원들의 사기를 이렇게 짓밟아도 되는 겁니까.』
『너무도 창피해서 추석연휴에 친지들을 볼 낯이 없을 정도입니다.』
20일,21일 중앙일보 편집국에는 「공무원 추석 비리 함정단속」이란 기사를 읽은 공무원 및 그 가족들의 분노에 찬 전화가 쉴새없이 걸려왔다.
『가장 깨끗해야 할 공무원이 비리를 저지른다면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지요. 그러나 형사피의자도 아닌 일선 대민행정공무원을 민원인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몸수색을 했다니….』
자신도 구청공무원이라고 신원을 밝힌 30대 남자는 격앙되다 못해 신파조의 넋두리를 계속했다.
『두 아이를 둔 가장이면서도 빠듯한 월급으로 아이들한테 추석빔 한벌 해 입히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 앞에 떳떳한 아빠가 되기 위해 부정 앞에서는 절대 무릎꿇지 않았거늘….』
공무원의 아내·자녀·부모등 수없이 많은 공무원 가족들이 전화를 걸어왔으나 모두들 공무원이 지켜야 할 청렴결백의 당위성에는 이의를 달지 않았다.
이들은 비록 부산지역에서만 일어난 일이지만 대민행정 일선의 공무원들에 대해 『선물을 맡겼다』는 등의 거짓전화로 추석비리 함정단속을 편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일선 공무원들의 비리보다 수서사건 등을 통해서도 확인됐지만 고위공직자들의 비리가 실상 문제가 되는게 아니겠어요.』
동사무소 직원의 아내라고 밝힌,서울에 산다는 한 주부는 공무원비리가 문제될 때마다 홍역을 치르는 것은 일선 말단공무원 뿐이라며 억울한 심정을 하소연했다.
『제가 아는 한 저의 남편은 깨끗한 공무원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앞으로의 일은 저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생활이 나를 속이더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지만 현실이 어디 그렇습니까. 생활하기가 점점 너무 힘이 들어요.』
흥분하다 못해 떨리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당국의 어리석은 함정단속이 얼마나 큰 성과를 거두었는지 모르지만 그것보다 훨씬 크고 많은 부분을 잃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전익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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