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급 사치품 소개는 되레 낭비심리 조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KBS 제1TV가 지난11일 밤10시 방송한 「한국, 한국인 이래서는 안된다」라는 기획프로를 본 많은 시청자들은 그 편성의도나 효과에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자칭 중산층이라 생각하는 우리 가정의 예를 들어보겠다. 「한국인 이래서는 안된다」라는 제목과 「분수를 너무 모른다」라는 부제를 보고 요즘들어 유행이 어떠니, 브랜드가 어떠니 하는 딸 아이와 아내도 봐둘만한 프로라 여겨 함께 TV를 지켜보았는데 내 계산은 크게 빗나가고 말았다.
재킷 하나에 육칠십만원등 한벌에 백수십만원씩이나 하는 옷가지들을 소개하고, 또 수백만원하는 가전제품과 수입가구들, 그리고 간혹 얘기는 들었어도 보지는 못해서 먼나라의 얘기 같고 실김이나지 않았던 팔구십평짜리 호화빌라와 화려한 그들의 생활상이 TV화면을 통해 줄지어 나타날 때 『백원도 백번 아끼면 만원이 되고 만원이 백번이면 백만원이 되니 백원도 아껴써야 한다』고 근검절약을 가르쳤던 나 자신을 딸애가 어찌 생각할지 속이 켕겼다.
바로 이때에 딸아이는 『아빠, 저것 보세요. 저런게 사치·낭비지, 학생이라고 한벌에 십만원도 채 안되는 옷한벌 사입는 것을 가지고 사치·낭비라고 하는 것은 말도 안돼요』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더욱이 아내마저도 며칠전 식탁을 바꾸자고 했을 때 『아직 사용하는 데는 하등 지장이 없는데 나이먹었다고 바꾸느냐』는 내 핀잔이 서운했던지 『어머, 저렇게 비싼가구를 쓰며 사는 사람도 있나』를 연발하며 나를 『구시대도 아주 구석기시대 사람』이라고 몰아 붙이니 결과는 혹떼려다 혹 붙인 격이 아닐수 없었다.
주변에 알아보니 이런 경험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TV프로를 보는 사람중엔 박봉의 여공으로부터 산간 벽촌의 아낙네까지 천차만별일텐데 과연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갖게 될지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날 TV는 부유층의 전유물이 아니다. 오히려 서민대중의 친구이자 교사요, 그문화이며 대변자라 할 수 있다.
그 영향력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막강한 것이다. 따라서 그 책임 또한 막중한 것이니, 건전한 사회기풍을 진작하고 바람직한 문화창달에 기여해야 할 막중한 의무가 그 운영자들에게 있다 하겠다.
따라서 서민대중의 시청료로 운영되는 공영TV는 그화면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를 생각하는 데 있어 항상 서민대중의 감각과 기준을 염두에 두어야 하고, 그 효과를 생각하고 분석해서 화면을 구상해야 할 것이지 흥미 위주의 사건이나 자료로 구성해서는 안될 것이며 목적의식이 있는 기획 프로에서는 더더욱 경계해야 할 것이다.
장영수<서울 은평구 갈현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