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칼럼] 한국경제 미래를 위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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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한국 경제는 3분기에도 여전히 경제 성장률 2.3%라는 저조한 실적을 보여주었다. 이것도 수출과 건설투자에 의존했고 국내 소비와 설비투자는 계속 마이너스를 보이고 있다. 또한 국내 정치.경제.사회 환경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집권당을 자칭하는 당은 소수라 제 기능을 할 수 없고 야당 의석이 3분의 2를 크게 초과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야 간에 첨예한 대립으로 경제주체들에게 불확실성을 증대시켜 주고 있고, 경제정책은 명료한 방향과 확신을 보여주지 못하고 오히려 우연을 기대하는 모습이며, 사회는 부안 사태와 노사 대립, 그리고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대하는 농민단체들의 극한 시위로 매우 불안하다. 따라서 현재의 한국 경제 상황은 "쓰레기 속에서 장미꽃이 피어날 수 없는 것처럼 거친 비바람 속에서 자본주의 나무는 자랄 수 없다"는 경제학자 새뮤얼슨의 말을 회상케 한다.

*** 우연 기대하는 듯한 경제정책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상당부분 정권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소수 의석으로 출발한 정권이 정강정책에 별다른 차이도 없이 여당을 분열해 신당을 창당함으로써 의석을 더욱 축소해 의회 내의 정치기반을 더욱 취약하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내년 4월 15일 총선 때까지 야당에 의한 국회 지배는 계속될 것이고, 이 상황에서 경제현안 해결을 위한 입법이 쉽게 이뤄질 수 없다. 야당이 말로는 민생을 함께 걱정한다고 하지만 선거를 눈앞에 두고 여당이 생색을 내는 법안에 동조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입법을 전제로 하는 경제정책은 17대 국회가 구성을 완료하는 내년 상반기 이후로 표류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총선 이후에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될 수 있을까. 최근의 여론조사를 보면 총선 이후의 정치상황도 지금과 별다른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불확실성은 경제주체들의 의사결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일반 가계는 미래를 위해 소비를 억제하게 되고, 기업들은 투자를 주저하게 되고, 외국 기업들은 한국에 대한 투자를 회피할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가 경제에 주는 불안감을 해소하는 것은 이 정권이 풀어야 할 과제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잠재 성장률 7%를 공약했다. 그러나 이와는 다르게 현 정부 출범 이후 잠재 성장률은 이전에 비해 감소하는 추세다. 잠재 성장률의 제고는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경제정책의 투입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로부터 경제정책 부문에 있어 적지 않는 미완의 문제를 이어받고 출발했다. 그러나 정부는 앞으로 2개월 후면 집권 1년을 맞이하게 되는 현재까지 구호성의 목표는 설정한 듯하나 당면 과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 노력은 보이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가 최근 신용위기에 처한 카드사들이다. 이 문제는 이미 올 봄에 제기됐던 것이나 원칙적인 처방없이 상황을 단기적으로 미봉하는 방법으로 해결했기에 이미 재발이 예견됐던 것이다.

시장개혁을 지향하는 정부가 경영에 실패한 기업이나 소유주에게 시장의 기본원리를 적용하지 못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카드시장에는 다수의 회사가 경쟁하고 있다. 경영에 실패해 스스로 생존능력이 없는 몇 개의 회사가 시장에서 퇴출된다고 해서 한국 경제에 큰 문제가 될 수 없다.

*** 카드사태 근본 해결책 마련을

그럼에도 정부는 단기적 충격이 두려워 과거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현재 문제는 일시적으로 지연될 뿐이지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이 아니다. 마치 죽음이 두려워 미리 자살하려는 방식이다. 이제 한국 경제의 미래를 위해 새로운 경제정책 발상이 필요한 것 같다.

현 우리의 사회 상황을 보면 각종 이익집단들의 자기 몫 찾기 투쟁으로 지금까지 땀 흘려 이룩한 경제기반이 위협당하고 있다. 정부는 현 상황을 단순한 민주화의 과정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이익집단 간의 조화 없이는 사회불안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상의 불안요인들의 해소를 위해 대통령의 결단이 요망된다. 안정된 정치 및 사회.환경없이 경제만이 잘 될 수 없다.

김종인 前청와대 경제수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