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 역사관(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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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선은/갸날픈 푸른 선은/아리따웁게 구울려/보살같이 아담하고/날씬한 어깨여/4월 훈풍에 제비 한마리/방금 물을 박차 바람을 끊는다. 그러나 이것은/천년의 꿈 고려청자기!
빛깔 오호 빛깔!/살포시 음영을 던진 갸륵한 빛깔아/조촐하고 깨끗한 비취여/가을 소나기 마악 지나간/구멍 뚫린 가을 하늘 한 조각/물방울 뚝뚝 서리어/곧 흰 구름장 이는 듯하다. 그러나 이것은/천년 묵은 고려청자기!』
월탄 박종화는 「청자부」라는 시를 통해 고려청자의 정교한 빚음 솜씨와 신묘한 비색을 이같이 찬양했다. 고려청자는 널리 알려진대로 우리 민족문화유산의 대표적인 걸작이다.
아직까지도 고려청자의 독특한 빛깔인 비색의 유약은 신비에 싸여만 있을 뿐이다. 「빛깔을 보고 마음을 밝힌다」(견색명심)는 옛말이 있다. 눈부시게 화려하지도 않고 조촐할 뿐이지만 포근한 안도감을 안겨주는 고려청자의 청아한 빛깔은 우리 선인들의 본래 마음바탕이었음직하다. 20세기말의 놀라운 과학문명으로도 끝내 되살려내지 못하는 고려청자의 비색.
청자는 중국 은나라때부털 시작돼 당·송대에 크게 발달했었다. 송나라 청자도 비색 발법이 대단했다. 그러나 비색의 색깔이 강렬하고 짙푸른 것이어서 그 격이 고려청자의 「은은함」에는 미치지 못했다.
고려시대의 그 유명한 청자들을 구워냈던 곳은 전남 강진군 대구면 소당리 일대의 도요들이었다. 고려청자의 본고장인 이곳 총 18만여평의 도요지에는 관수용 최상급 청자를 구워내던 청자가마터가 1백83기나 밀집돼 있다. 강진일대 도요지에서는 역시 명산지답게 「청자사자뉴개향로」를 비롯한 국보 20점,보물 20점의 귀중한 문화재들이 출토되기도 했다.
문화부와 전남도는 내년부터 3개년계획으로 12억원을 들여 강진에 4백평 규모의 전시실을 갖춘 「청자역사 자료관」을 건립한다고 한다. 전시할 복제유물에 기어코 고려청자 고유의 비색을 되살려내겠다는 청자역사관 건립의 포부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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