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약식기소 남발/법원서 법정구속 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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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죄질 나쁜데 벌금만 물리고…”/형평잃은 법적용에 경종/천8백만원 훔친 전과5범에 2백만원 벌금청구
검찰이 벌금으로 가볍게 약식기소한 피고인을 법원이 이례적으로 형평이 어긋나고 죄질이 나쁘다는 이유로 첫 공판에서 법정구속한 사건이 잇따라 검찰권행사에 경종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재야 법조계에서는 국가 형벌권을 대신하는 검찰이 형평을 잃고 사건처리를 임의로 하는 것은 검찰권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실추시키는 일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서울 형사지법 이진성 판사는 12일 차량검사를 의뢰하면서 3백30만원의 뇌물을 준 혐의로 벌금 3백만원에 약식기소된 도현찬 피고인(39·삼진카도크 상무),1천8백만원을 훔쳐 절도혐의로 벌금 2백만원에 약식기소된 김무섭 피고인(29·부동산중개업·전과5범)을 첫 공판에서 각각 법정구속했다.
도피고인은 삼진카도크를 운영하면서 1월부터 4월말까지 차량검사를 의뢰한 5백86명의 차주로부터 「급행료」명목으로 3백30만원을 받아 서부검사소 직원 장영진씨(39)등에게 건네준 혐의로 서울지검이 벌금 3백만원에 약식기소했으나 이판사가 지난달 12일 정식재판에 회부했었다.
또 김피고인은 89년 12월 서울 예지동 K금은방에서 주인 정모씨(29)가 자리를 비운 사이 수표등 1천8백여만원의 금품을 훔쳐 달아난 혐의로 검찰이 벌금 2백만원에 약식기소했으나 서울 형사지법 김대영 판사가 정식재판에 회부했었다.
이판사는 『도피고인과 함께 병합심리중인 다른 피고인 중에는 차주들로부터 2백90여만원을 급행료로 받아 이중 1백20여만원을 검사원에게 건네준 혐의로 구속기소된 경우가 있어 범죄액수가 2∼4배나 되는 도피고인이 약식기소된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법정구속했다』고 밝혔다.
이판사는 또 『절도죄가 적용된 김피고인의 경우도 훨씬 적은 액수의 절도범이 구속돼온데 비해 액수가 큰데다 3회나 집행유예선고를 받은 전과까지 있는데도 약식기소한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아 법정구속 했다』고 말했다.
한편 도피고인을 약식기소한 서울지검 양모검사는 『급행료를 받은 사람·액수가 특정이 안된데다 경찰에서 불구속으로 송치해 약식기소했다』고 밝혔으며 김피고인을 약식기소한 강모검사는 『돈을 꾸려다 꿔주지 않아 훔쳐간데다 피해변제를 했기 때문에 벌금으로 처리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모 변호사는 『검찰이 범죄인을 응징한다는 의지로 보다 무거운 처벌을 요구하고 법원이 정상등을 참작해 구형량보다 양형을 경감해 주는 게 정상적인 사건처리 절차인데 비해 이같은 재판부의 법정구속 사건이 잇따르는 것은 검찰권 행사에 큰 잘못』이라고 지적하고 형평을 잃은 검찰의 자의적인 법적용은 결국 법조계 전체의 공신력을 실추시키게 된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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