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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원들 분수지켜라(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서울시 의회가 지방의회 의원들에게도 세비에 준하는 활동비를 지급할 수 있도록 법개정을 여야 정당에 요구한 것은 지자제의 기본취지에 어긋날뿐 아니라 분수를 모르는 염치없는 짓이다.
지방의원을 유급직으로 하느냐,무보수 명예직으로 하느냐는 지자제 관계법과 정신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것으로서 그때 그때 편의에 따라 법을 고쳐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지자제 관계법은 49년 최초 실시 이후 계속 의원의 무보수 명예직 원칙을 지켜왔다. 이는 일찍 지자제를 실시한 서구 다수국이 채택한 제도로서 지방의원은 내마을 살림을 챙기고 지역발전에 헌신하는 봉사직임을 전제한 것이다.
때문에 이런 법체계와 정신을 다 알고 출마해 당선된 의원들은 어떤 경우에도 법이 정한 회기중의 일비·공무상 여행경비 이외의 보수를 요구해서는 안된다. 그야말로 출마때 약속한대로 재산과 시간을 바쳐 존경과 신뢰를 얻겠다는 정신으로 일해야 마땅하다.
물론 우리사회가 법정신을 제대로 구현하기에는 많은 어려움과 모순을 안고있음을 안다. 수억원을 들여 당선됐고 당선후에도 각종 기부금 요청 등 유권자들의 금품요구가 끊이질 않는데 어떻게 이를 깡그리 외면할 수 있느냐는 호소가 있을법 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그만한 애로가 없는 곳이 어디있는가. 모두가 제 몫만 찾아 법따로 현실 따로,제멋대로 법 고치기를 능사로 한다면 국가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제 겨우 임기개시 몇달을 지내놓고는 밥그릇부터 챙기겠다고 나서는 것은 누가 뭐래도 염치없는 짓이다. 선거때 희생과 봉사,일꾼을 다짐해놓고 지금와서 보수를 지급해야 이권이나 청탁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일에 전념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수긍할만한 논리가 못된다.
지방재정상 세비를 지급하는 것 역시 무리다. 모두 5천1백70명의 광역·기초의회 의원들에게 월1백만원씩 지급하면 연간 6백20억원이 든다. 그런데 현재 전국 2백75개 자치단체중 77개(28%)는 자체수입으로 직원 월급도 못줄 정도로 재정자립도가 취약하다. 의원세비에 할애할만한 예산이 없는 곳이 수두룩하며 지방재정은 지역개발과 주민 복리에 우선 사용되어야 함은 두말할나위 없다.
또 꼭 유급직으로 할만큼 지방의원의 업무가 방대하거나 전문성이 필요하지도 않다고 본다. 서울시 의회는 지방의회의 회기연장·감사범위 확대까지 요구하는 모양인데 한마디로 난센스다. 지방자치란 법률상 재량의 여지가 한정되어 있고 국회처럼 고도의 전문성이나 판단력을 요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지방의원들이 분수에 넘는 권한과 대접을 요구하는데는 선거직이 갖는 특수성에다 일부 유권자들의 비뚤어진 의원관이 작용하고 있다. 유권자들도 관혼상제 참여 요구 등 의원들에게 경제적·시간적 부담을 주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 진짜 봉사하는 위원들에게는 신뢰와 존경을 보내고,도덕성이 낮거나 비리에 물든 사람은 투표로써 가려내는 지혜를 지금부터 축적해 나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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