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 넘친 세계시의 축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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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지난달 22일부터 27일까지 유고슬라비아의 마케도니아에서는 그렇게 요란스럽지는 않았지만 세계의 문인들이 주목하는 한 뜻깊은 시의 행사가 개최되었다.
공식명칭은 「스투루가 시의 밤」으로 되어 있는 동구의 대표적인 시의 행사가 그것이다. 「스투루가 시의 밤」은 이 시의 축제가 2천년의 역사를 지닌 마케도니아의 고도 스투루가에서 매년 개최된데서 붙여진 명칭이다.
올해로 30회를 맞은 스투루가의 시의 축제는 이 위원회의 지명 초청자 이외에는 누구도 참여할 수 없다. 따라서 여타의 세계 시인대회와 달리 참가시인의 수는 양적으로 매우 적지만 그대신 질적인 수준은 상당히 높다.
스투루가 시의 축제는 대체로 네가지 프로그램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첫째는 매년 이 위원회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시인에게 황금화환상을 시상하는 일인데 올해는 노벨상 수상 시인 조세프 브로드스키가 수상하였다. 둘째는 매년 하나의 민족문학을 선정하여 폭넓게 논의하고 그 내용을 한권의 연구서로 간행하는 일로 올해는 스위스 문학이 그 대상이 되었다. 셋째는 주어진 테마로 심포지엄을 개최하여 이 역시 다음해 비평집으로 묶는 일이다. 올해의 테마는 「종교적 성서와 시의 상관성」이었다. 필자는 앙리 메쇼닉, 추미레이몽드, 에두아르, 발라사브등 네명과 함께 「시의 언어와 종교의 언어」라는 제목의 주제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스루루가 시의 밤」의 본질을 이루는 것은 거리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시낭독을하는 행사라 할 수 있다. 대중과는 벽을 쌓은채 외국유명문인들을 대거 초청, 문인끼리만 호화롭게 치르는 속빈 강정같은 우리의 국제문학행사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아름다운 오히리드 호수에서 발원하는 드림강가에 밤무대를 마련하고 각국의 시인들이 자신의 모국어로 시를 낭독하면 마테도니아방송국의 성우가 이를 다시 마케도니아어로 변역, 낭독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행사는 스투루가 인구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1만여 시민이 운집하여 이를 듣고 환호한다. 그야말로 시의 축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마케도니아 텔리비전이 이를 유고슬라비아 전역에 생중계함은 물론 마케도니아의 대통령과 각료 전원 역시 청중석에 자리잡고 앉아 끝까지 시인들의 시 낭송에 갈채를 보낸 것도 인상적이었다. 이와 같은 시 낭독회는 모두 세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대통령은 꼭 참석하는 성의를 보여 주었다. 위로는 지도자로부터 아래로는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정말로 시를 사랑하는 유고슬라비아 국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의 행사기간 미술전람회·음악회·패션쇼·무용발표회등을 병행시킨 것도 축제무드를 고취시키는데 한몫을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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