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층 병무부조리에 "철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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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무더기로 검찰에 적발된 부산지역 개업의들의 동원예비군 기피 사건은 이들이 법무담당공무원·예비군중대장·군부대간부들과 짜고 이루어진 구조적 병무부조리였다는 점에서 충격을 더하고있다.
일부 의사들이 병역기피를 노린 프로축구 선수들에게 무릎 연골수술을 해줘 파문을 일으킨데 이어 또다시 밝혀진 이번 사건은 법을 어겨가며 궂은 일들을 모두 돈으로 해결하려는 황금만능주의가 사회지도층에까지 만연된 사회병리현상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의사들의 예비군훈련 기피는 지금까지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져 왔는데도 검찰등 수사기관에선 그동안 무얼하고 있었느냐는 비판과 함께 이를 계기로 예비군훈련 전반에대한 관리·감독이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되고있다.
특히 이번 수사대상도 부산지검 동부지청 관할인 해운대구·동래구·금정구등 3개 지역 군의관 출신 개업의에 한정됐고 지난 한햇동안의 기피여부를 추적한 것이었다.
따라서 부산지역 전동원훈련 참가 의사들을 대상으로 수사를 벌일 경우 최소한 2백여명 이상의 기피자가 밝혀질 것이라는게 검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적발과정=검찰은 생활에 여유가 있는 사회지도층들인 의사들이 예비군 훈련을 상습적으로 기피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 지난달 중순부터 수사에 착수했다.
우선 훈련참가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병무청의 병역동원소집명부, 구청보건소에 비치된 의료기관개설대장·진료기록카드를 확보, 서류검토작업을 통해 훈련기간인데도 진료행위를 한 개업의 81명을 가려냈다.
검찰은 이중 24뎡을 불러 조사를 끝내 기피사실을 확인했으며 나머지는 이번주부터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지난달말 의료보험공단부산지사에서 예비군훈련기간이었으나 진료를 해 보험청구를 한 개업의들에 대해 고발해와 수사가 촉진되기도 했다.
◇기피유형=병무담당공무원과 짜고 허위질병 진단서를 끊어 관할 구청에 동원훈련 소집연기 신청을 낸뒤 군부대에 들어가지 않고 일반예비군으로 주거지에서 훈련받을 수 있는 미지정훈련으로 변경한다.
이어 관할 예비군중대장·병무담당 공무원에게 청탁, 뇌물을 주고 아예 훈련에 빠지는 것이 전형적인 기피사례.
다음은 허술한 관리·감독 체계를 이용, 병원사무장이나 심부름센터의 대리인을 고용해 대리훈련을 받게하는 경우다.
이밖에 동원된 군부대에서 입소 첫날 부대 간부들에게 부탁, 돈을 주고 훈련을 받지 않은채 되돌아오는 수법을 쓰기도했다.
지난해 동원훈련에서 해제됐던 부산시 전포동 S내과 이모씨(44)는 『예비군훈련으로 1주일동안 병원문을 닫을 경우 고객관리는 물론 하루 수십만원의 손해를 보게된다』며 『이때문에 상당수 의사들이 대리훈련등을 통해 빠지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점=의사들의 경우 예비군훈련기간과 진료기록카드등을 대조, 참가여부를 추적할 수 있는 여지가 그나마 있지만 일반 사업가등은 관계 공무원들과 결탁, 훈련에 빠졌다 해도 훈련기간중 특별 감사등을 통해 적발하지 않는한 밝혀낼 길이 없다.
특히 예비군 중대장이나 병무담당 공무원들이 대부분 해당지역 출신들이어서 훈련참가 의사들과 유착돼 손쉽게 부조리가 이루어지고 있다.
대리훈련의 경우도 한꺼번에 많은 인원이 훈련에 참가하는 탓에 하나하나 본인 여부의 확인이 어렵고 병무청 직원들과 군부대 장교간의 인수·인계 과정에서 결탁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직접 훈련에 참가할 경우에는 진료를 현역 장교인 공중보건의나 통합병원 군의관, 일반병원 인턴등에게 맡기는 대리의사가 성행해 또 다른 문제가 되고 있다. 【부산=정용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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