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은 천∼천5백만원선/판공비(정치와 돈:6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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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식비가 절반 이상 국회 로비자금도 한몫/「관례적」으로 조달… 개인 능력 따라 큰 차이(주간연재)
서울 양천구청장의 판공비 2천만원을 의원들이 빼내 썼다고 해서 물의를 빚은 적이 있었다.
시의원들의 행태도 문제지만 구청장의 판공비가 2천만원이나 되느냐로 놀란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 돈은 구청장 판공비가 아니라 구의회 운영비로 밝혀지긴 했다. 실제로 서울시 구청장들의 판공비는 한달에 1백8만원 정도다.
서울시 본청 국장의 월정 판공비가 30만원이지만,구청장은 같은 급수라도 구장이기 때문에 훨씬 많은 차관급 판공비를 받는 것이다.
구청장의 경우 구청 직원수를 기준으로 한 인원가산금과 사업성 특판비 등을 모두 합할 경우 실제 사용 가용금액은 월2백만∼2백50만원 수준이다.
장관급인 서울시장은 기관운영 판공비 외에 직책판공비로 월 1천만원을 따로 받아 예산상 책정된 판공비가 월 1천5백만원 수준이다. 그러나 각종 사업 추진에 따른 특판비 등을 감안하면 월 2천만원 이상일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비해 경찰 총수인 경찰청장은 차관급으로 기관운영 판공비는 다른 청장·차관급처럼 월 1백8만원이다. 여기에 사업특판비 등을 합하면 실제 사용액은 월 5백만원 수준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시국사건 등으로 비상근무가 계속될 때는 대통령이나 내무장관 등으로부터 특별 격려금이 지급되기도 한다.
이처럼 판공비는 부처마다 다르고 같은 부처라 해도 기관장 개인의 스타일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문제는 정부 예산상의 액수와 실제 씀씀이가 엄청나게 다르다는 점일 것이다.
장관의 경우 예산규정으로는 부처의 직원수와 조직규모·사업규모에 따라,그리고 특수목적의 정보비 책정규모에 따라 결정된다.
장관들이 쓰는 판공비는 기본적으로 이같은 예산규모가 바탕이 되는 것이지만 실제 씀씀이는 크게 보아 경제부처가 비경제부처보다,정치인 출신이 관료 출신보다 많다.
예산규정상 장관들이 쓰는 경비는 기관운영 판공비·특별판공비·관서당경비 등 크게 세가지로 대별된다.
기관운영 판공비는 모든 장관들이 똑같이 정액으로 받는 월 1백35만원(차관은 60만원)과 각 부처의 직원수를 기준으로 책정된 인원가산금으로 구성돼 있다.
인원가산금은 직원 1천5백명 정도의 부처는 매월 3백만원 정도.
관서당경비란 부처내 실·국 등 소속기관들이 쓸 수 있는 판공비인데 장·차관 몫이 계상돼 있으며 특별판공비는 기본적으로 사업 추진에 필요한 것들이다.
정부 규정으로는 기관운영 판공비는 ▲축의금과 조의금 ▲직원들의 각종 친목단체 활동 보조,각종 대내행사 지원,각종 포상금 및 격려금 등 직원 사기대책비 ▲방문자 접대비 등으로 사용된다.
관서당경비의 용처는 ▲유관기관 업무협의 ▲당정협의 ▲홍보대책 ▲대민협의회·간담회비 등으로 규정돼 있으며 장·차관 몫은 서로 나누지 않고 함께 총무과 등에서 집행한다.
특별판공비란 ▲외국인사 초정 접대 ▲장·차관 회의비 ▲각종 국제회의 참석 지원 ▲각종 기념일 행사비 ▲사업 추진에 소요되는 접대비·연회비와 이에 따른 잡비성 경비 등을 포함한다.
이런 것들을 모두 합친 통상적 의미에서의 장관 판공비는 부처별로 한달 3백만∼4백만원 수준이다.
그러나 장관이 업무추진은 물론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드는 경비는 이것을 훨씬 초과하기 일쑤다. 그야말로 움직일때마다 돈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 장관들이 매월 지출하는 판공비 규모는 1천만∼1천5백만원 수준으로 보고있다.
물론 법제처·통일원 등 소속직원 규모가 작고 사업이 없는 부처는 이런 엄두를 내지못한다.
기관장들의 판공비중 반 이상은 각종 회의·연회 등 식비가 차지하지만 가장 큰 몫은 국회 로비자금이다.
국정감사나 예산을 심의하는 정기국회는 물론 임시국회 등 국회가 열리면 의사당 안팎에서 각 정부부처와 관련 산하기관들이 소속 상임위 의원들을 상대로 활발하게 움직인다.
장관이 스폰서가 되는 소속 상임위 의원 초청 골프모임·술자리가 마련되고 회의의 원만한 진행과 안건처리를 위한 윤활유가 뿌려진다.
의원들의 외유때 관련기관들이 「축장도」의 봉투를 전달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있다. 지난번 말썽난 상공위의 무역특계자금도 비슷한 용도로 쓰였다.
몇년전 어느 경제부처 기획관리실장은 장관명의로 중진의원에게 「축장도」봉투를 전하다 「인간적인 모멸」을 당한 적이 있었다.
이 중진의원은 기획관리실장이 봉투를 전하자 그자리에서 봉투를 뜯어 보고는 『나를 뭘로 아느냐』고 호통치면서 집어던졌다. 봉투에 든 돈은 미화 2천달러(약 1백50만원)였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장관은 다시 두툼한 봉투를 전하면서 사과까지 곁들여야만 했다.
이런 과외의 턱없는 판공비는 해당부처에서 「관례적」으로 일부 조달하고 나머지는 개인능력으로 끌어다 쓴다.
사업하는 친구나 산하단체 또는 부담이 적은 기업들로부터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자기 돈을 쓰는 장관들도 있다고 한다.
기관장들의 판공비는 업무 추진에 필요한 경비다. 기업에도 접대비니 하는 손비처리가 인정되는 경비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경비의 다과가 그 부처의 「힘」과 비례해서도 안될 것이고,또 그것이 「좋은자리」의 기준이 되어서도 안될 것이다.<박병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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