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주 "방황하는 아이들의 희망 되고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최경주가 갤러리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백종춘 LA지사 기자]

미주 중앙일보가 후원하는 PGA투어 닛산오픈이 16일(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리비에라 골프장(파 71)에서 개막했다.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 태평양을 건넌 지 7년 만에 PGA투어 4승, 통산 상금 1000만 달러 고지를 밟은 최경주(37)도 출전했다. 날카로운 눈매, 다부진 몸집이 주는 무뚝뚝한 인상과 달리 최경주는 소탈하고 말도 재미있게 했다. '인간 최경주'를 아는 사람들은 그의 여러 미덕 중에서도 남모를 선행에 가장 감복한다. 그동안 아내를 통해서 건네준 '결식 어린이 돕기' 성금만 2억6500만원에 이른다.

-완도에서 어떻게 골프를 시작했나.

"어린 시절,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의 열렬한 팬이었다. 주말에 동네 야구를 하면서 비닐로 글러브를 만들어 야구를 즐겼다. 타격감이 좋아 항상 4번 타자였다. 하지만 학교에 야구부는 없었고 마침 골프부가 창단됐다. 어느 날 골프채를 들고 샷을 했는데, 그 느낌에 '뿅' 갔다. 야구보다 몇 배는 더 재미있었다. 열다섯 살 때 일이다."

-아버지가 완강히 반대했다던데.

"당시는 사람들이 골프에 대해 전혀 몰랐던 시절이었다. 단 한 가지, 골프가 비싸다는 것만 알았다. 나도 감이 좋았기 때문에 했지 안 그랬으면 포기했을 것이다. 주위 사람들을 설득하느라 한참 걸렸다."

-자선 사업을 활발하게 하는데, 특별한 동기라도 있는지.

"한국에 방황하는 아이들이 많다. 장애인 어린이, 부모가 돌아가셔서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어린이, 또 부모가 이혼해 절망에 빠진 아이들…. 그들은 갈 곳이 없다. 그런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보람도 많이 느낀다. 11년 전 도와줬던 애들이 군대도 갔다오고 대학도 다닌다. 지금도 자주 e-메일을 받는다."

-자선 활동은 신앙심에서 나오는 것인가.

"그렇다. 불우 어린이들도 예수님.하나님을 믿고 성장한다면 언젠가는 좋은 길로 가게 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내가 도와주는 아이들이 행여나 잘못된 길을 가더라도 내가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을 보면서 '이러면 안 되지'라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

-신앙을 갖게 된 계기를 얘기해 달라.

"아내를 만나지 않았으면 신앙이라는 걸 몰랐을 것이다. 아내는 모태 신앙이다. 연애할 때 교회 안 가면 데이트 안 해 준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가 93년이었다. 나에게 종교는 큰 의미가 없었다. 일요일에는 놀고 싶어서, 또 연습하느라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와 함께 한 번, 두 번 다니다 보니까 좋은 말씀도 많이 듣고 다 나를 위한 소리 같았다. 그러면서 인생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많이 갖게 됐다. 아내를 잘 만났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미국에 와서 외로움에 힘들었지만 믿음으로 잘 견뎠다. 신앙이 없었다면 포기했을 수도 있다."

-PGA 선수로서, 또 인간 최경주로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전설적으로 골프를 잘한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또 '나도 저런 사람이 돼야지'라고 할 수 있는 삶의 모델이 되고 싶다. 교회를 많이 짓고, 보육원도 많이 짓고 싶다. 궁극적인 목표는 불우 어린이들을 돕는 것이다. 이들이 먹고 자고, 운동까지 할 수 있는 복지단 하나를 꼭 만들겠다."

첫날 1오버 … 해링턴 선두

최경주는 닛산오픈 1라운드에서 1오버파 72타로 공동 72위에 그쳤다. 파드리그 해링턴(아일랜드)이 8언더파로 선두에 나섰고, 비행기로 출퇴근하는 '패밀리 맨' 필 미켈슨(미국)이 5언더파 공동 2위에 올랐다.

로스앤젤레스=원용석 LA지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