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지의 풍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신문과 방송에 연일 보도되는 「가볼만한 피서지」를 메모하던 아이들도, 가족과 함께라면 언제라도 떠나겠다던 남편도 말복·입추가 지나자 『올해도 가족피서는 글렀다』며 휴가타령을 끝냈다.
다가올 새학기 준비로 분주하던 막내아들이 2주전 주말 아침 갑자기 담요를 둘둘 말아 얹은 베낭을 메고 집을 나갔다. 다행히 그의 방 책상위에는 금용사 l박2일이란 쪽지가 있어 두딸, 남편과 함께 그를 찾아 뒤늦은 피서(?)를 나섰다.
내가 국민학교 5학년때, 50리 길을 타박타박 걸어 가을소풍 갔던 금용사. 먼지나는 신작로를 걷다가 다리가 아프면 주저앉아 쉬기도 하고 산등성이를 타고 지름길로 가다가 가시덩굴에 긁혀 피가 나고 쐐기에 쏘여 상처가 부풀어오르기도 했다.
이제 나는 그 길을 30년이 지난후 주름진 얼굴에 분과 연지를 바른 중년여인이 되어 옛 기억을 더듬어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소달구지가 지나가면 모로 비켜서야 했던 좁은 길은 2대의 큰 차가 지날 수 있도록 넓어졌고, 부드러운 물줄기를 뿜던 길가쪽 낭떠러지 바위밑 작은 폭포는 쓰레기가 쌓여 물과 함께 썩고 있었다.
흰박덩이를 이고 옹기종기처마를 맞대고 있던 길옆 초가 대신 민박·오골계·꿩요리전문이란 간판이 달린 회색벽돌집이 들어서 있다.
유원지가 가까워지자 앰프를 통해 울려나오는 피서객들의 노랫소리, 라디오소리, 떠드는 소리….
나는 정신이 몽롱해져 딸들의 손을 꽉 잡았다. 계곡을 좀더 올라가니 빨래하고 목욕하고 머리감고 솥걸고 밥하고 고기굽는 사람들. 고스톱판이 벌어진 이곳 저곳에서 탄성과 함성이 쏟아진다. 이 소란속에 고1짜리 사춘기 내 아들은 어디 있단 말인가.
다시 계곡을 따라 오르니 나무그늘 한쪽 평지에 둥글게 앉은 대학생인듯한 5, 6명 남녀가 마침 합창을 끝낸다. 갑자기 그중 하나가 「잃어버린 30년 게임」을 외친다. 그러자 모두 손바닥장단을 치며 잊혀진 소리를 재현하는 것이 아닌가! 「동동 구리무요」 「야경이오」 「제삿밥 드시오」 「찹쌀떡에 메밀묵」…. 갑자기 무겁던 마음이 소화제라도 먹은듯 개운해지는 것이었다.

<경북상주군함창읍오동리 575의21>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