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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여사원 날로 증가|여상출신 취업 갈수록 좁은문|여행원은 60%가 기혼‥‥입행 바늘구멍|평생직장으로 꼽히는 회사일수록 더욱 심해|생산직은 태부족…여성인력 새수급방안 시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선배님. 저희들도 은행원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제포기할수밖에 없나봐요.
우리에겐 은행의 문턱이 너무 높아져 버렸어요. 선배언니들이 결혼을 하고서도 계속 다니기 때문이죠.
꺼내기 어려운 말이지만 선배언니들! 후배들을 위해 길을 비켜주실수는 없는지요….』
서울S여상 3학년 학생들이 최근 한국은행과 서울신탁은행에 다니는 동문선배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다.
예전에도 이런 편지가 가끔 있었지만 집단적으로 보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S여고생들의 편지는 각 기업에서 「결혼퇴직」이 줄어드는 바람에 빚어지고 있는 사회적 마찰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공기업체등 여성들에게 이상적인 「평생직장」으로 꼽혀온 분야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취업자 40%가 여성>
한 시중은행장은 『여은행원 면접시험에 들어가면 「평생 열심히 근무하겠다」고 말하는 지원자들이 태반입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한편 고맙기도 하지만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열심히 근무하다가 결혼하면 그만두겠다」는 대답을 듣고 싶거든요』라고 말한다.
그는 『외국처럼 전문적인 서비스가 갖춰지지않은 우리나라의 금융계 풍토에서는 고객들이 기혼여성보다 미혼여성들의 창구서비스를 원하는게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기혼여성에 대한 경영진의 거부반응에도 불구하고 노조결성등 민주화추세와 평생직장을 선호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어 직장에서의 기혼여성근무는 갈수록 늘어날 정망이다.
국내은행의 경우 여행원 가운데 기혼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이미 60%에 이른다.
그러나 사무직에시 나타나는 이같은 「고용마찰」은 이들 직종에 근무하는 기혼여성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생산직에서의 인력난이 심화되고 있는등 전체적인 여성인력 수급구조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여성노동은 우리 경제를 떠받치는 거대한 기둥이다.
우리나라 여성취업자는 7백34만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40%를 웃돌고 있다. 고용인력 10명가운데 4명이 여성인 셈이다.
더구나 인력난이 심화되고있는 가운데 해외인력의 활용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인력은 앞으로 개발여지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가용인력의 저수지이기도 하다.
정부는 7차5개년계획기간중 활용가능한 인력자원을 2백40만8천명으로 추산하고 있는데 이중 65%인 1백56만6천명이 여성인력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여성인력개발은 근본적으로 방향이 잘못돼 있다.
우선 여성인력을 단순한 대체 인력으로만 보고 있다.
다시말해 섬유·봉제등 저임금을 바탕으로한 산업에서 미혼여성의 이탈에 따른 공백을 주부노동력에서 찾고있는 것이다.
정부가 주차단속원·매표원등 여성인력개발의 전문분야로 제시하는 업종도 노동강도가 낮아 남성노동력의 대체인력이 필요한 업종들뿐이다.
물론 이들 업종에서 주부인력을 활용하는 것은 나름대로 중요한 일이다.
도자기생산업체인 행남사의 경우 전체여사원 가운데 주부사원이 70%가 넘는다.
회사측은 주부사원이 미혼여성보다 생산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미혼여성의 이직률이 높아 앞으로 주부사원이 더 늘어날것으로 보고 있다.
주부인력은 상대적으로 노무관리가 쉽고 임금이 낮기 때문에 민간기업들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들고 있지만 생산직 이외의 부문에서는 오히려 채용을 꺼리고 있다.
기업들은 「근무기한이 길어질수록 기혼여성의 임금은 늘어나지만 생산성은 이에 못미친다」는 경험적 판단아래 「결혼퇴직」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기업의 한 인사담당자는 『직장에서 일하면서도 가사를 도맡아야 하는 기혼여사원의 경우 노동생산성이 떨어질 수 밖에없다』며 『사무용품에서까지 비용절약을 꾀하는 회사입장에서는 기혼여성의 처지를 고려해 그만큼의 손실을 감당할 여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전문분야 교육 필요>
결국 우리나라는 여성노동력을 대체인력, 또는 결혼전까지의 한시적인 인력으로만 생각함으로써 여성인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현행 교육제도는 여성노동력의 개발이라는 현실적 필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예를들어 남성의 경우 고교때부터 기계·전기·건설·농업·상업등 실업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있지만 여성인력은 교과과정이 대부분 실업교육에서 동떨어져 있다.
여상정도가 사무보조기능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그나마 취업문이 좁아져 결국 여성인력은 학원등·비정규교육기관이나 사회에서 재교육을 받은 뒤에야 활용할 수 있는 형편이다.
물론 여성인력개발을 위해서는 여성 스스로 전문분야 확대, 직업의식을 강화시키는 것도 필수적이다.
그러나 여성단체들은 여성 노동력을 올바르게 개발하기 위해서는 여성노동에 대한 사회의 시각이 먼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성단체연합회 김금래사무총장은 『여성들의 사회활동 의욕에 비해 현실의 문턱은 너무높다』고 말하고 『미숙련 여자생산직사원을 값싼 노동력으로만 이용하려 들고 사무직 여직원을「직장의 꽃」으로만 이해하는 사회풍토에서 진정한 여성인력개발은 발을 붙일 수 없다』고 밝혔다.
다른 전문가들도 『이제 여성인력은 여성적 기준에서만 판단하거나 저임금의 「수단」으로 머물기에는 너무 사회적 비중이 커졌다』며 『그동안의 말다툼과 법정공방에서 벗어나 사회전체가 여성인력의 올바른 개발을 위해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일때가 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철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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