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쿠데타지지설 한때 곤혹”/공로명대사가 지켜본 격변하는 소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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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경협 예정대로 추진”정부 관리말 와전/소련 정국 혼란속에 정상화 되찾을것
강경보수파의 불발 쿠데타후 지난 수일동안 소련에서 나타나고 있는 변화가 급진적이고 과격한 것은 사실이지만 소련에서 수년간 진행돼온 개방과 개혁을 감안할때 또다른 사태전환이나 혁명은 없을 것 같다고 공노명 주소 대사가 진단했다.
공대사는 지난달 29일 모스크바시내 주소 대사관에서 중앙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소 사태의 진정 가능성을 이같이 말하고 한때 모스크바에서는 한국 정부가 쿠데타세력을 지지했다는 소문이 나돌아 당혹했다며 한국 정부의 대소경협등 북방정책은 성급했던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디음은 회견 내용.
­처음 소련에서 쿠데타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국내에서는 도대체 소련 개혁정책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고 무척 걱정했었습니다. 그런데 쿠데타가 3일만에 끝나고 요즘에는 소연방의 붕괴가 시작되고 있는 것과 같은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도대체 요즘 어떻게 돌아가는 겁니까.
○북한공관 한때 기세
『사실 우리의 경험에서 보면 요즘 무척 혼란스런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소연방의 미래와 연관해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될 새로운 연방조약의 체결이 이달 중순부터 시작될 것이고 현재까지는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도 연방마저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소련의 정국은 혼란스러운 과정에서도 가닥을 잡아나갈 것으로 보입니다.』
­요즘 진행되고 있는 변화를 놓고 「20세기 들어 가장 큰 사건이다」「러시아에서 벌이지고 있는 제2혁명이다」는등 말들이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소련에 공여하기로 한 30억달러의 차관이 너무 성급한 것이 아니었느냐는 말도 있는 것 같습니다. 과연 그렇게 성급하게 북방정책을 시도했어야 했느냐는 의문입니다.
『아직까지 소문처럼 우리들의 우려를 살만큼 차관이 무분별하게 집행되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북방정책이 너무 성급하게 추진된 것이 아니냐는 의문에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의견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의 유엔 가입이 성사된 것은 모두 북방정책의 성과입니다. 북방정책은 시기가 오히려 늦었던 것이지 절대로 성급했던 것이 아닙니다』
­공산주의가 붕괴되어 가는 현실을 직접 목격하고 계신데 소련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변화가 북한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취재 현장에서 부닥친 북한 기자들도 지난번의 쿠데타에 상당한 기대를 걸었는데 쉽게 실패해 큰 충격을 느낀 것 같던데요.
『쿠데타 기간중 북한 대사관 사람들의 사기(?)가 무척 많이 올라갔던 것이 사실입니다. 평상시에는 기자회견장이나 기타 외무부의 행사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던 사람들이 지난 19일 오전의 외무부 기자회견장에는 5명이나 몰려 왔었습니다. 이번 사건은 북한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을 것이 확실합니다. 아마 북한의 정책이 상당히 변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도 시대조류를 따라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을 겁입니다』
○제2쿠데타 없을 것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또 한번의 쿠데타가 발생하지 않을까하는 걱정들을 하고 있습니다. 러시아공화국 의회 빌딩주변의 바리케이드도 아직 그대로인채 방치되어 있고 시내 주요 도로의 교통통제도 계속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쿠데타 이후 나타나고 있는 변화가 너무 급진적이고 또 어떤 경우에는 혁명적인 분위기에 편승해 초법률적인 행동이나 명령들도 나타나고 있어 또 한번의 혁명적인 변화가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지요
『지난 수일동안 나타난 변화가 너무 급진적이고 과격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이러한 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뭔가 후환이 있지 않겠느냐는 걱정을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 생각으로는 그러한 사태가 발생하기에는 소련에서의 개혁이 이제는 너무 앞질러 나갔다고 보여집니다.』
­우리 대사관은 쿠데타가 발생한 사실을 언제 알았습니까.
『이곳 시간으로 18일 오전 4시쯤 소련측의 내부 인사로부터 무엇인가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후 곧바로 이러한 정보를 기초로 정확한 사태의 내용을 파악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우리가 확보하고 있는 모든 채널을 동원해 비상대책위의 구성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향방등 가능한한 최대한의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 결과 공식 발표가 있기 전에 궁정 쿠데타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태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었습니까.
○돌발사태 예감했다
『물론 시기나 정확한 규모 등에 대해서는 예측을 하지 못했지만 보수파에 의한 쿠데타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항상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멀리는 셰바르드나제 전 외무장관이 경고한 바 있고,가까이는 아코블레프 전 대통령 자문관이 경고를 했었습니다. 또한 쿠데타가 발생하기 직전 루키야노프 연방최고회의 의장이 발표한 성명 등을 통해 충분한 예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쿠데타 발생후 쿠데타가 성공할 것으로 생각 했습니까.
『19일 마침 아시아 우방 대사관에서 리셉션이 있었습니다. 정보교환을 기대하고 리셉션에 갔습니다. 그때 그곳에서 만난 랍체프 민족회의 의장이 1주일 정도 사태를 지켜보라고 하더군요. 또 그러면서 쿠데타주동 세력의 8인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정통성을 확보하려면 26일 개막되는 최고회의에서 승인을 얻어야 한다고 해 쿠데타가 수월치 않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이러저러한 정보 등이 계속해 들어와 비교적 냉정하게 쿠데타를 분석하고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쿠데타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쿠데타세력을 지지했다는 소문이 많이 나돌았습니다.
취재를 위해 만났던 많은 연방정부 관리들,러시아공화국 관리,언론인들도 이에 대해 질문을 해왔습니다. 아마도 30억달러 경협은 예정대로 진행된다고 한 정부의 모 관리의 말이 와전된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만 정확한 진상은 어떤 것입니까.
『21일 아침 그러한 보도가 나왔다고 해 저희들에게도 문의해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무척 괴로움을 당한 것이 사실입니다. 당시까지도 소련 대사관의 입장은 간접적으로 중단을 의미하는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성명 정도가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입장을 본국 정부에 전달했었습니다. 그런데 쿠데타의 실패가 거의 확실해져가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그러한 성명을 냈다는 보도가 들어왔으니 당혹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타스통신 부인 보도
그런데 다행히 이러한 보도가 나간지 2시간이 지나 타스통신이 이러한 내용을 부인하는 보도를 내 우리의 곤란한 입장이 해소되었습니다.』
­이번 사태를 보고 특별히 느끼신 점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죠.
『이번 사태를 통해 소련 국민들의 용기와 민주주의에 대한 강력한 열망 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소련 국민들의 위대함이 드러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모스크바=김석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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