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팔린 인술(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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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인술이 돈에 팔렸다.
28일 오전 10시 서울 남부경찰서 3층 강당.
신체검사에서 현역입영대상자로 확정된 현역프로축구선수 등의 멀쩡한 무릎연골을 잘라내 「병신진단서」를 발급,징집면제를 받게해준 부산 부일정형외과 원장 구본희씨(56)와 구씨로부터 시술을 받은 운동선수 39명은 당당하기만 했다.
『왜 대학병원에서 행해지는 이러한 수술을 단속하지 않고 불쌍한 개인병원만 제물이 돼야합니까.』
『나는 고통받는 환자를 치료해줄 의무가 있는 의사일뿐입니다. 징집면제의 가부결정은 병무청에서 할 일입니다.』
30년 경력으로 부산에서는 「실력」을 인정받아 왔다는 구씨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입각,「진짜 환자」만을 진료해왔다며 자신의 억울함을 강변했다.
『징집면제를 원하는 환자의 약점을 이용,40만원하는 수술비를 멋대로 80만∼2백50여만원으로 올려받지 않았습니까.』
계속되는 변명을 듣고있던 경찰의 힐문에 대해 구씨는 『의료보험수가대로 돈을 받으면 병원운영이 어렵다』고 궁색한 답변을 했다.
『환자가 병역기피를 위해 수술하려는 의도를 몰랐습니까.』
경찰의 계속되는 추궁에 구씨는 처음부터 『잘 몰랐다』는 대답으로 일관하다 『일부 환자는 알고 있었으며 이 수술로 징집면제가 가능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고 진술을 번복하기도 했다.
같은 시간 옆에서 조사를 받고있던 징집기피자들의 대부분도 『무릎에 정말 이상이 있어 수술을 했으므로 병역면제는 당연하다』는 식의 억지주장을 펴기는 마찬가지였다.
『무더위속에서 최전방 철책선을 지키는 막내아들이 생각납니다. 이번 사건은 신성한 국방의 의무에 대한 모독이죠.』
한 경찰관의 어이없어하는 모습과 달리 구씨와 징집기피자들의 태도는 의료인의 윤리의식,스포츠맨의 페어플레이 정신과는 거리가 멀어 「후안무치」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신성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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