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영교수의열린유아교육] 아이들은 '말 통하는' 아버지 원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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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서 뛰어 놀던 아이들이 약간 시들해질 무렵 H의 아빠가 아이들을 데리고 텀블링 놀이터에 가게 되었다. 엄마들은 오랜만에 회포를 풀겠다는 생각이어서 따라나서지 않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화한 모습으로 나가는 키 큰 아빠가 든든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남자라서 아이들을 제대로 다룰 수 있을까?'하며 걱정이 되었다. 우리 모두는 SOS전화라도 오면 뛰어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지만 아빠는 1시간 반 만에 아무 사고 없이 돌아왔다. 아빠를 따라 들어서는 아이들은 엄마들을 따라다닐 때보다 더 의젓했다. 엄마하고 있을 때에는 떼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 아빠 앞에서는 나름대로 노력한 것으로 보였다. 아빠는 힘들었다고 하면서 한 아이가 물을 달라고 하면 모두 달라고 하고, 양말을 벗으면 따라 벗으려 하는 등 도무지 아이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하였다. 그리고 높이 뛰어오르는 아이, 낮게 뛰는 아이 할 것 없이 22개의 눈동자가 자신에게 쏠려 있어 부담이 되었다고도 했다. 그렇다. 아이들은 아빠의 존재만으로도 든든하게 느끼고 안심했던 것이다. 아이를 돌보며 키우는 것은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아이들과 생활하며 조금씩 터득되는 후천적 지혜다. 아빠들도 아이에게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김정미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아버지와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남학생은 26.9%, 여학생은 20%나 되었다. 대학생들은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고, 관심을 보여 주며, 느낌이나 생각을 이야기해 주는 등 사소한 것들을 나누는 아버지를 바랐다. 어머니와는 남학생 99%, 여학생 94%가 통한다고 이야기한 것과 대조된다. 학생들 대부분은 가정이 화목하지 않은 이유가 아버지에게 있다고 생각했고 아버지를 증오하는 학생들도 꽤 있었다.

자녀와 마음 통하기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기 안아 주기, 잠자기 전에 책 읽어 주기, 함께 놀아 주기, 아이가 억울한 일을 당할 때 한 팀이라는 확신 주기 등 다양한 경험을 유아기부터 함께해야 아이들 마음에 아버지가 들어갈 수 있다.

이원영 중앙대 유아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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