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제2혁명」 시작됐다/“탈 공산” 이후 어디로 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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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소 국민들은 새 이념·새 지도자 기대/옐친 초헌법권력… 거세질 군부 반발
소련에서의 공산당지배가 종식됐다.
19일부터 사흘동안 전세계를 경악시키면서 진행됐던 보수강경파에 의한 쿠데타가 당초 의도했던 소련공산당의 강화나 공산이데올로기의 부활이 아닌 공산당과 공산주의 이념의 몰락이라는 전혀 의외의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서기장직 사임,공산당 해체,공산당 재산의 소비예트로의 이관 등을 선언한 고르바초프의 성명은 이제 더이상 소련공산당이 집권당이 아니며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소련의 지배이데올로기가 아님을 선언한 것이다.
24일 밤 8시쯤(모스크바시간) 최초로 이와 같은 뉴스를 전했던 인테르팍스의 한 관계자는 『이것이야말로 진짜 혁명이며 고르바초프의 공산당에 대한 쿠데타』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고르바초프의 당서기장직 사임과 사실상의 공산당해체를 선언함으로써 이제 소련은 지난 85년부터 진행되어았던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의 결정적인 국면을 맞게 되었다.
또한 이와 같은 결과는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에서 지난 74년동안 계속돼왔던 공산주의·이데올로기 실험의 실패를 선언한 것으로 중국·북한·쿠바 등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고르바초프와 이같은 선언은 또 「인간의 얼굴을 가진 공산주의」를 목표로 시도됐던 사회주의 개혁의 실패를 이미한다.
고르바초프는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공산당 중앙위,서기국과 정치국이 쿠데타에 반대하지 않았다. 이러한 행동은 많은 당원들의 행동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민주사상을 가진 공산당원들과 헌법준수에 충실했던 당원들이 새로운 기초위에서 전체 진보적 세력들과 함께 근본적 민주개혁을 위한 노력을 위해 새로운 정당의 창당모습을 보일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지만 그의 이와같은 호소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이미 소련의 민중들은 변화된 공산당과 변혁의 가능성을 갖고 있는 공산주의 이념에 미련을 갖기보다는 새로운 이념,새로운 정당,새로운 지도자를 갈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는 끝났다』『레닌은 공산혁명을 피로써 성취했지만 모스크바 시민은 민주혁명을 3명의 희생만으로 이룩해냈다』『이제 소련도 국가재건을 민중들이 원하는 자본주의의 방향으로 재빨리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는 등의 반응속에서 공산당이 재기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89년부터 동유럽에서 진행됐던 시민혁명,민주혁명이 보수파의 쿠데타라는 전혀 의외의 촉매제에 의해 소련땅에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시작된 민주혁명이 순탄하게만 진행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고르바초프를 비롯한 연방정부,과거의 집권세력이었던 공산당의 권위가 급격히 무력화되면서 진행되고 있는 이와 같은 반공적인 상황전개는 초헌법적인 권력의 행사와 함께 러시아민족주의의 부활,지방공화국의 분리독립선언을 가속화시킬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옐친과 고르바초프의 권력승계에 관한 합의나 공산당의 불법화,옐친에 의한 언론매체사장 해임 등은 시민혁명의 분위기속에서 이루어진 것이지만 헌법이 부여한 권한을 뛰어넘는 것들이다.
물론 옐친은 러시아의 복권,유럽에의 회귀를 강조하고 발트3국을 비롯한 분리파공화국들의 독립을 용인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중앙아시아공화국을 비롯해 입장과 이해를 달리하는 지방공화국들과 각 공화국내의 자치공화국들은 반드시 이러한 연방해체의 분위기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공산당내 좌파개혁주의자들의 모임인 코뮤니스트그룹등과 결합,새로운 좌익정당을 결성,사회민주주의운동과 정치활동에 나설 고르바초프도 일정시간이 지난 다음 다시 특정이슈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려할 것이다.
이러한 정치혼란의 와중에서 느슨한 연방제로 통합된 EC와 같은 연합국가건설의 시도가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지 현재로선 전망하기가 쉽지않다.
우크라이나공화국,백러시아공화국,발트3국 등 5개 공화국은 이미 독립을 선언했고 다른 5개 공화국도 독립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한 이들 공화국내에서 과거의 죄를 물어 공산당에 대한 재판회부까지도 고려하겠다고 밝혀 이에 대한 공산당원과 군부세력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였다.
특히 군부의 경우 비록 쿠데타에 대한 반발 분위기등에 밀려 아직까지는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연방의 와해나 고르바초프의 무력화,민족갈등의 재연,경제난의 악화로 인한 혼란 등이 나타날 경우 계속 침묵할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약점을 안고 있는 옐친 등 개혁파들은 급속한 개혁을 달성하기 위해 보다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한 독재권력을 행사하려할 것이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새로운 갈등과 독재의 위협이 나타날 가능성도 높다.
공산당의 해체와 대체신당의 결성,연방조약의 체결 등을 목전에 두고 있는 소련의 앞날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급격한 변화의 흐름에 빠져들고 있는 것 같다.<모스크바=김석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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