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사회주의 풍자만화 유행(지구촌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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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개방화·천안문 사태후 대부분 아마추어들이 제작/지도층 부패·통제경제 “단골”… 정신적 보상심리 작용
중국 당국이 사회주의 이념과 정치노선 대립에 열을 올리고 있는 한편,서민들은 이들을 만화나 만담의 소재로 즐기고 있다.
중국 인민들은 전통적으로 시사성이 강한 풍자물을 공연,봉건체제하의 억압과 모순을 교묘한 흉내와 유머로 풍자함으로써 정신적인 보상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도 북경의 번화가 서단의 전통극장이나 텔리비전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시앙성(상성)은 청대에 발생한 풍자물이다.
북경의 개인사업자(개체호)들이 이번 여름철을 맞아 신상품으로 개발했던 반소매상의 「문화삼」도 그 발생배경에서 보자면 전통 중국사회의 산물인 상성과 맥을 같이한다.
황제가 죽어 가무가 금지되는 국상기간이 길어지면서 생계를 잃게된 경극배우들이 거리로 진출,노래대신 성대묘사와 재담으로 호구지책을 삼은데서 시작된 것이 상성이었다.
한편 「문화삼」은 사회주의체제가 허용한 극히 제한된 범위속에 돈벌이를 하는 개체호들의 상혼이 낳은 것이다.
문화삼에 넣은 도안이나 글귀들은 무언의 풍자가 들어있다. 얼핏보면 특별한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북경 시민들은 그 미묘한 뜻을 쉽게 가려낸다.
『정말 피곤해(진루)』와 같은 짧은 것에서 『밀수로 한탕 벌려니 간이 작고,장사를 하자니 밑천이 없고,출세를 하자니 처세술을 모르네. 근근히 살아가는데 밥그릇이 깨어졌네. 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네』와 같은 긴 문장도 있다.
「진루」의 단 두글자속에는 공산당의 일방적 지시나 대중캠페인에 시달리는 서민들의 불편한 심기를 읽을 수 있다. 밀수로 한탕 벌 수 있다는 발상은 해방이후 한국에서도 한때 가장 수지맞던 「밀수붐」이 지금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어쨌든 문화삼의 글귀들은 대부분 천안문사태이후 사회주의체제에 대한 염증과 실망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불만삼」으로 불리기까지 한다.
이같은 문화삼은 1920년대 상해에서 등장했던 「문명희」와 비교될 수도 있다.
신식극이라는 의미의 문명희는 상해·만주일대에서 공연되던 거비시(격벽희)와 수어신원(설신문),샤오러훈(소열혼) 등 시사풍자를 담은 만담극이었다.
문명희·상성·문화삼 등은 중국인들 일상의 저변에는 봉건시대로부터 지금의 사회주의시대에 이르기까지 풍자와 해학이 일관되게 흘러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풍자와 유머를 직접 소재로 삼는 만화가 중국에서는 1백년쯤전 서양에서 수입되어 왔다는 사실은 좀 의외에 속한다.
게다가 만화다운 만화가 등장한 것은 개방·개혁체제가 등장했던 80년 이후에 속한다.
그 이전의 중국만화는 내외정세가 혼란과 압박으로 점철됨에 따라 내용도 「전투적 풍자」 일색이었다. 그러다가 순수한 유머가 다루어지게 된 것은 최근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전업화가는 극소수의 예외에 속하고 압도적 다수가 다른 직장을 가진 아마추어화가라는 것 또한 특징이다.
이들 아마추어들은 기량이 전차만별인 만큼 직업도 노동자·농민·군인·교사·은행원 등 다양하다. 그 만큼 중국의 사회와 세태를 저변에서부터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중국 만화들의 주제가 사회주의 중국의 「억압과 혼란」에 맞춰지고 있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공산당원의 특권의식과 부패,무능,사회주의 경제의 모순과 근로자들의 무사안일·이기주의,산아제한으로 「1가정1자녀」가 되면서 발생하는 과보호풍조,개방바람이 불면서 일어나는 「웃지못할 촌극」들이 단골메뉴가 되고 있는 것이다.
체제의 감시와 억압에 의해 표현의 자유가 봉쇄되어온 상황에 비춰볼때 아마추어들의 만화는 결국 전통풍자극이나 문명희·문화삼과 성격을 같이하고 있다고 하겠다.<홍콩=전택원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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