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와 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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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국민소득이 늘어나 초근목피로 끼니를 잇던 것은 옛말이 되고 피서여행을 외국으로 나갈 수 있을 만큼 되었다. 상상도 못했을 정도로 발전한 셈이다. 그러나 이처럼 발전한 것이 무척 고맙기는 하나 한편으로는 소박한 인정이 넘치던 가난한 옛날이 그리워지는 면이 있음을 숨기기 어렵다. 그 좋은 예의 하나가 의사와 환자의 관계다.
옛날 환자와 의사의 관계를 선배의사의 이야기에서 찾아본다. 60년대 시골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있을 때인데 어느 비내리는 밤 20여리밖 동네에서 사람이 뛰어와 왕진을 요청했다고 한다. 비내리는 밤길을 의사는 왕진가방을 실은 자전거를 타고, 가족은 그저 뛰어서 뒤따라가며 환자상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등 황급히 왕진을 갔다.
그 선배의사는 진찰을 마치고 필요한 치료를 했다. 그 당시 약은 지금의 약에 비하면 물론 대단치 않았다.
대단치 않은 치료에도 고마워하는 가족으로부터 받은 보리 석 되를 왕진가방과 함께 싣고 돌아오는 어두운 길에 논에 빠져 자전거는 고장나 버렸다. 고장난 자전거를 끌고 돌아오는 20리 길에 물론 사람도 젖고 보리 석 되도 젖어버렸지만 며칠 뒤 회복 후 찾아온 환자의 손을 잡고 웃을 때는 이미 고생한 기억은 전혀 없었단다. 대단치 않은 치료 때문이 아니라 환자에 대한 의사의 사랑과 정성, 의사에 대한 환자의 믿음이 함께 어울렸기에 병이 나은 것이다.
권모술수의 고전적인 교과서로 알려진 『한비자』를 보면 『사람은 이익을 좇는다 (인축리이위)』라는 말이 있다. 조금 더 상세한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수레를 잘 모는 왕량은 말을 몹시 사랑하고, 월왕인 구천은 그의 백성들을 몹시 사랑했다. 왕량이 그의 말을 사랑한 것은 말이 더욱 빨리 달리게 하기 위해서고, 구천이 백성을 사랑한 것은 그들이 자신을 위해 더 용감하게 싸워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의사가 환자의 피고름을 빠는 것은 어진 마음에서가 아니라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다.』 동양의 고전인 『논어』와는 전혀 다른 논법이다.
의사가 치료비 몇 천원에 해당하는 것만큼만 환자에게 정성을 기울이고, 환자는 의사에게서 치료비 몇 천원에 해당하는 것만 기대한다면 의학이 훨씬 더 발전한 지금이라 하더라도 질병의 치유율은 아주 낮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각박해지고 있는 지금의 환자와 의사관계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 쪽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한비자』의 논리가 얼마나 비인간적인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물질적인 기준만으로는 따질 수 없는 소중한 것을 우리는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서울대 의대·내과) 서정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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