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창 안에서 타버린 '코리안 드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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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경보기도 울리지 않았고, 스프링클러도 없었다. 무방비 상태의 부끄러운 화재였다.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왔던 외국인들은 쇠창살에 갇힌 방안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11일 오전 3시55분쯤 전남 여수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불이 나 보호 중이던 외국인 9명이 숨지고 1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불은 외국인 보호동 3층 304호실에서 나 순식간에 305, 306호실로 번졌다. 당시 보호동 3층 6개 방엔 남자 51명, 4층에 여자 4명이 수용돼 있었다.

쇠창살로 격리된 외국인 수용 방 열쇠조차 2층 상황실에 보관돼 3층에서 화재 진화를 시도하던 직원이 구조를 위해 다시 2층으로 내려와 가져가야 했다. 이 바람에 피해가 더 컸다. 화재 경보음조차 울리지 않았다. 경비과 오용호 계장은 "화재경보기를 작동시켰으나 울리지 않았다"며 "소화기 세 개를 사용해 화재 진압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고 말했다.

스프링클러는 아예 설치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소방방재청은 "소방법상 바닥 면적이 1000㎡ 이상이면서 4층 이상의 층에만 설치하도록 돼 있다"며 "불이 난 곳은 3층이어서 스프링클러를 달 의무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불법 체류자들이 24시간 수용돼 있는 시설에 기본 방재 시설인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여수=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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