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사범에 6공 첫 〃최고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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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사노맹 박노해씨 구형의 의미
「얼굴 없는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남한사회주의 노동자동맹」(사노맹) 중앙위원 박기평피고인(34·필명 박노해) 에게 사형이 구형돼 공소사실 자체에 대한 법률적인 평가를 떠나 재야운동권 등에 커다란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박피고인에 대한 사형구형은 사노맹내에서 박씨보다 한단계 낮은 비중을 지녔던 남진현피고인(30·중앙위원)에게 무기징역이 구형 (선고량은 12년) 될 때부터 이미 예상됐던 일.
그러나 검찰 스스로 북한과 연계되지 않은 자생적 사회주의자로 규정한 피고인에 대해 사영을 구형한 것은 이례적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박피고인의 사형구형을 놓고 재야운동권은 공소사실의 유·무죄에 대한 공방보다 교정의 노력을 포기한 채 극형 의사를 밝힌 검찰의 시각에 반발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물론 재판부의 선고절차가 남아있어 사형이 그대로 유지되지 않고 형량이 낮아질 가능성이 높지만 공권력이 박피고인에 대해 「사회격리」라는 극단적인 처방을 요구한 것은 사노맹사건에 대한 정부의 강경한 대응의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사노맹은 6공 들어 반국가단체로 처음 규정된 조직. 자생적 사회주의집단의 총책격인 박피고인이 반국가단체수괴혐의로 사형을 구형받은 것은 남파간첩이나 북한과 연계된 사건이 아닌 반국가단체 사건으로 기소된 경우로는 5공초기인 81년 전민학련사건의 이태복씨 이후 10년만의 일이다.
당시 이씨는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됐으나 2심에서 무기로 감형됐었다.
이 사건외에 10·26직후인 79년12월 자생적 반국가단체인 남민전 사건으로 5명에게 사형이 구형돼 1심에서 모두 사형이 선고됐다가 2심에선 2명에게만 사형이 선고되고 나머지는 무기징역 이하로 감형됐다.
검찰은 박피고인에 대한 사형구형 이유로 사노맹의 노선과 투쟁방향·조직·내용 등에 있어 범죄 혐의가 매우 무겁다는 점을 들고 있다.
특히 박피고인에게 적용된 혐의 가운데 반국가단체를 구성하고 그 「수괴」로 활동했다는 부분의 법정형은 사형 또는 무기징역밖에 없어 선택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검찰은 사노맹이 90년대말 무장봉기를 통해 임시민주정부를 구성한 다음 2000년대엔 반동관료숙청, 토지 및 생산수단의 국유화 등 완전한 사회주의국가를 건설한다는 목표를 가진 전형적인 반국가단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사노맹은 ▲전국적 규모의 조직망을 형성하고 막대한 자금 동원력을 갖춘 조직이며 ▲철저한 비밀지하조직인데다 ▲구체적인 무장봉기를 계획하고 잡지 등을 통해 사회주의혁명 투쟁을 선동하는 등 실천적 투쟁활동을 벌여왔다고 검찰은 밝히고 있다.
검찰은 더욱이 박피고인이 법정에서 국가전복·사회주의건설을 공공연히 표방하는 등 정상참작 여지가 없어 국가존립과 대다수 선량한 국민의 안위를 위해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시키는 조치」불가피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변호인단은 박피고인에 대한 반국가단체혐의 적용이 경직된 종래의 법적용기준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변호인단은 사노맹이 국가보안법상의 반국가단체로 볼 수 없고 사상과 결사·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헌법 원칙하에서 사회주의 이념 관철을 위한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또 국가 전복목적이 인정되려면 국제법상 교전단체임이 인정될 수 있는 인적·물적 시설이 확보돼 있어야 하고 국가전복을 위한 객관적 행위와 실제적 수단이 있어야 하는데 사노맹은 이러한 의미의 반국가단체와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재판과정에서 변호인측 증인으로 나온 서울대 한상진교수는 『자유민주주의사회에서는 다양한 이념·사상의 공존이 보장돼야 하며 특정 집단이 폭력과 명백히 연결되지 않는 한 국가형벌권 발동보다 공개토론을 통해 왜곡된 이념을 여과 수용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아무튼 달라진 시대환경과 다기다양한 이념이 혼재하는 현시점에서 「자생적인 사회주의자」인 박피고인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과는 별도로 사형구형 자체가 몰고올 파장도 작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석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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