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탄 화폭 속의 죽음 그리고 부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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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봄’. 200x259㎝. 캔버스에 아크릴.2005.

샛노랗게 몸을 흔드는 꽃, 하얗게 웃고 있는 꽃, 타오르듯 붉은 입술을 내민 꽃. 색색의 꽃이 흐드러지게 핀 숲에 나비떼가 격렬하게 날고 있다. 공간에 핏물처럼 흩뿌려지는 선홍색, 소복을 입고 하얗게 몰려온 흰색, 마음을 어루만지듯 뒤따르는 노랑색. 화면 중앙에는 검게 타버린 나무 둥치가 굳건하게 서 있다. 그 뚜렷하고 당당한 존재감은 이 모든 꽃과 나비가 실은 망자를 위한 사모의 노래, 진혼의 춤임을 알리고 있다. 중견 작가 남홍(51)의 2005년작 '봄'(큰 사진)이 전하는 감성이다.

그의 작품은 보는 이에게 온몸으로 부딛혀 온다는 점이 특징이다. '산에는'(오른쪽 작은 사진)을 보자. 눈 덮인 산 아래 시퍼런 강물을 배경으로 새떼가 날고 있다. 노랑과 빨강과 하양의 새떼는 당신이 묻힐 산으로 가는 꽃상여일터이다."그대 잘 가라 꽃상여 타고." 혹은 생전에 당신이 내게 주었던 정갈하고 따스하고 정열적인 마음일 것이다. 다정한 말 한마디, 따스한 손길 한번이 한 마리씩 새가 되어 내 마음과 세상을 온통 채우고 있는 것인가.

‘산에는’.130x196㎝.캔버스에 아크릴. 2005.

프랑스에서 26년째 활동 중인 중견작가 남홍의 한국전이 13~24일 열린다. 장소는 서울 인사동 학고재(02-739-4937)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02-580-1841). 이번 전시는 지난해 파리 16구청이 열었던 '남홍의 밤'이 모태다. 한.프랑스 수교 120주년 기념행사의 마지막 이벤트였다. 그 작품들의 한국순회전을 학고재가 기획한 것이다. 대구문화예술회관(3월7~18일)과 광주시립미술관(10월경)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프랑스에서 그는 '불과 재의 시인'으로 불린다. 불 탄 한지를 둘둘 말아 화면에 콜라주하거나 캔버스를 촛불로 태워 그을리는 독특한 기법 때문이다. 작품의 일관된 주제는 향수와 그리움, 죽음과 부활이다."1985년 할머니, 2002년 어머니와 같았던 친언니(화가 고 이강자씨)의 죽음이 깊은 영향을 미쳤다"고 작가는 말한다.

‘나비’.130x196㎝. 캔버스에 아크릴. 2005.

2001년에는 프랑스 문화협회가 주는 '황금 캔버스상'을 수상했다. 2004년에는 프랑스 문화재의 날 기념행사로 오베르 성의 오랑쥬리 전시관에서 초대전을 열었다. 같은 해 프랑스 미술 전문지 '위니베르 데자르'(Univers des Arts:미술세계, 2월호)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는 90년대의 한지 콜라주에서 2006년 신작에 이르는 180여 점을 가져왔다. 한국에서는 2001, 2005년에 이어 이번이 세번째 개인전이다. 그는 퍼포머로도 유명해 개막일인 13일 한가람미술관에서 꽃과 천을 이용한 퍼포먼스도 벌인다.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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