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이 부화하기 전에 병아리 숫자 세지 마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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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5차 3단계 6자회담 이틀째인 9일 미국과 북한이 "달걀이 부화하기 전에 병아리 숫자를 세지 마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미국의 외교 사령탑인 콘돌리자 라이스(사진(右)) 국무장관은 8일(현지시간) 워싱턴 미 상원 예산청문회에서 6자회담과 관련, "베를린 북.미 접촉 등 좋은 대화가 있었다"며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9.19 공동성명 이행을 재개할 가능성이 있다"며 조심스러운 낙관론을 폈다. 이어 그는 "달걀이 부화하기 전에 병아리 숫자를 세는 법이 아니다"고 신중한 입장을 표명했다.

라이스 발언이 있은 지 10여 시간 후 6자회담 북측 수석 대표인 김계관(사진(左)) 외무성 부상의 입에서도 똑같은 표현이 튀어나왔다.

김 부상은 9일 베이징 시내 리츠 칼튼 호텔에서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와 오찬 회동을 마치고 기자들에게 "우리는 미국 대표단 단장 힐 선생과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점심 식사에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고 회담을 진전시키기 위한 방도적인 문제로 의견을 나눴습니다. 일련의 문제에 대해서 의견 일치를 본 것도 있고, 전반적인 회담을 보면 일련의 대치점이 있는데 그건 좀더 노력해 타개해 보고자 합니다"고 말했다. 이어 김 부상은 "닭이 깨어나오기 전에 몇 마리인가 세어 보려고 애쓰지 말고 좀 푹 지켜 보십시오"라고 덧붙였다.

◆힐 "조심스럽게 낙관한다"=힐 차관보는 이날 김계관 부상과 오찬 회동한 뒤 기자들에게 "조심스럽게 낙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힐 차관보는 "중국이 제안한 합의문 초안을 두고 김 부상과 의견교환을 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6자회담이 열리고 있는 동안 회담장 밖에서 별도의 북.미 회동이 이뤄진 것은 이례적이다. 회담장 주변에선 미국이 협상의 속도를 내기 위해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한국 대표단도 분주히 움직였다. 이날 새벽까지 중국으로부터 받은 합의문 초안을 놓고 내부 회의를 한 대표단은 객실에서 아침식사를 하면서 협상 준비를 점검했다. 수석대표인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회담 전망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일단 협의를 해봐야 알 수 있다"고 답한 뒤 회담장으로 향했다.

◆국무부 "단계적 절차 거칠 것"=톰 케이시 국무부 부대변인은 "6자회담의 성공 여부는 한반도 비핵화를 명시한 9.19 공동성명의 이행 여부에 따라 평가될 것"이라며 "모든 걸 한꺼번에 이행할 수 없으므로 단계적 절차를 거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 재무부는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동결된 북한 계좌 일부를 풀어 주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데이비드 애셔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선임자문관이 8일 밝혔다. 북한의 달러 위조 등 불법활동을 조사하다 2005년 7월 그만둔 애셔 전 자문관은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회견에서 "BDA에 동결된 북한 자금 중 불법행위와 관련된 자금과 불법행위와 관련됐을 가능성이 작은 자금이 구별된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재무부가 직접 제재를 푼다고 발표하기보다 마카오 당국이 조치를 취하는 방식으로 BDA 자금 일부에 대한 동결이 해제될 것"이라며 "미국의 제재로 묶인 2400만 달러의 절반 정도가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워싱턴=이상언.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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