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딛고 노장 불꽃투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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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노장의 뜨거운 피로 팀이 되살아날 것인가.
「그라운드의 여우」로 불리는 김재박(김재박·38·LG·1m74cm·75kg)이 최근 팀이 칼날 위를 걷는 4위 다툼을 벌이자 손목부상에도 불구, 후배들을 채찍질하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8개구단 4백73명의 현역 프로야구선수 중 OB의 계형철(계형철·39)에 이어 최고령인 김은 또 8개구단 타자 중 최고의 몸값(연봉6천7백만원)에 걸맞게 신인 못지 않은 체력을 과시하며 공·수의 선봉에서 팀을 이끌고있다.
대중속의 스타로 자리잡은 김재박이 있기까지에는 험난한 시련의 연속이었기에 그의 플레이가 더욱 값지게 부각되고 있다.
지난 68년 대구 경북중에서 처음 야구와 인연을 맺은 김은 체격이 왜소하다는 이유로 외면한 경북고를 떠나 가까스로 서울대광고에 진학했다.
한을 품고 서울에 올라온 김은 손바닥이 갈라지도록 방망이를 휘둘러 댔으며, 다른 선수들이 잠든 사이 모래주머니를 차고 운동장을 도는 등 피눈물나는 개인훈련을 거듭했다.
그러나 대학진학 때에도 키가 작아 장래성이 없다는 이유로 대학팀들은 또다시 그를 외면했다. 결국 김은 새로 창단 된 영남대에 겨우 입학, 유랑 야구인생을 끝내고 스타플레이어의 자질을 키우게된다.
김은 영남대에서 지옥훈련으로 유명한 배성서(배성서 전빙그레및 MBC감독) 감독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야구에 눈을 뜨게되며 마침내 활짝 꽃피운다.
77년 백넘버 7번을 달고 실업무대에 뛰어든 김은 그 해에 소속팀 한국화장품을 7관왕에 올려놓고 개인상마저 7개나 휩쓸게 된다.
또 김은 그 해 국가대표로 뽑혀 슈퍼월드컵 국제대회에서 타격·최다안타·도루상을 차지하며 한국이 우승하는데 결정적 수훈을 세운다.
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 프로세계에 뛰어든 김은 7일 현재 10년동안 통산 9백7안타로 최다 안타부문 6위, 득점4백73점으로 3위, 타점3백2점으로 13위등 이제까지 8백78경기에 출전하고있다.
김은 오는 11월 일본에서 벌어질 한·일 슈퍼게임에 10년만에 태극마크를 달고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싶어한다.
그러나 우선 발등에 떨어진 불은 팀을 페넌트레이스에서 4위권 안에 올려놓는 것이다. 이 같은 결정적 순간에 김은 지난달 하순 부상으로 그라운드에 나서지 못하게되는 불운을 맛보기도 했다. 조바심이 난 김은 흩어진 정신을 집중시키기 위해 야구못지않게 뛰어난 당구(7백점)를 간간이 쳐보기도 했다고. 부인 정복희(정복희·36)씨와의 사이에 1남2녀를 둔 김은 아들(기현·10)만큼은 그 힘든(?)야구를 시키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
김은 그라운드에선 여우지만 운동장을 떠나면 텁텁한 성격에 아직도 수줍음을 탄다. <장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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