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수통한 세모 「이득」규명이 열쇠/집단변사­자수/상관관계 밝혀질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오대양과 연관성 없으면 세모 자수개입 이유없어/자수자 진상 아는지도 의문
오대양 살해암장범들의 자수가 (주)세모의 계획적인 배후조종에 따른 것으로 밝혀진데 이어 자수과정에 현직 경찰관이 깊숙히 개입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나 막바지에 이른 이 사건 수사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그동안 석연치 않았던 자수과정의 베일이 한껍질씩 벗겨지면서 암장범들의 당초 주장도 허위였음이 점차 밝혀져 오대양사건의 최대 의혹이자 핵심인 32명 집단변사와 자수의 상관관계가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힐 기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자수경위 및 배후=지난해 3월부터 이재문씨(39)의 주도로 전 오대양 직원들이 모임을 가져오다 이 가운데 김도현씨가 『87년 8월29일 집단변사 발생전 노순호씨등 4명을 살해·암장했다』는 범행사실을 처음으로 발설했다.
이때부터 이씨의 소개로 (주)세모 윤병덕 해외개발부장(41),구원파 교단 간부인 손영수씨(41),잡지 『새길』기자 최숙희씨(35·여) 등이 암장범들과 접촉을 갖기 시작했다.
자수여부에 대해 설왕설래하던 이들은 지난해 7월 서울 서초구 이영문 경사(27)가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자수사전준비에 착수했다.
현재까지의 수사결과 이경사는 같은 구원파 신자로 암장범들의 자수후 진술내용등을 교육시키기 위해 이재문씨의 요청에 의해 모임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세모측과 구원파가 암장범들을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조종한 흔적이 발견되는 만큼 이경사도 세모나 구원파 상부의 뜻에 따라 수사전문가로서의 기능발휘를 위해 합류했을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즉 자수모임 참석자들의 인적구성을 살펴볼때 세모 윤부장은 암장범들의 생계지원등 물질적 보상을,구원파 손씨 등은 종교적 믿음주입을 위한 신앙교육부분을,이경사는 수사기관에서의 신문대응 교육과 법률적인 조언을 맡는등 각자의 신분에 따른 역할분담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신분상 차이는 있지만 자수모임 참석자들은 『세모·구원파와 오대양은 무관하다』는 믿음주입에는 일치했던 것으로 보여 이같은 자수논의 과정에서 세모측과 구원파의 개입이 얼마나 치밀하고 조직적이었는가를 반증해주고 있다.
검찰은 특히 세모의 의사결정 스타일로 미루어 볼때 유병언 사장 모르게 자수가 추진됐다고는 볼 수 없으며 자수과정에 유사장이 『잘해보라』는등 소극적으로라도 묵인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자수동기=검찰은 우선 살해암장 사실에 불안감을 느낀 암장범들이 먼저 자수의사를 밝히자 세모와 구원파가 이를 세모와 오대양사건의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는 호기로 판단,적극 개입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검찰의 이같은 추정은 세모와 구원파가 종교연구가 탁명환씨 및 침례교신학대학 정동섭 교수와의 사이에 계속되고 있는 여러 소송에서 폭로될 것으로 예상되는 「세모와 오대양 관련설」 등을 완전히 해소시키는 계기로 삼기 위해 암장범들 자수에 개입했을 가능성 때문이다.
검찰은 이같은 추정의 근거로 ▲구원파내부에 탁씨 등의 폭로에 대한 위기감이 신경과민적으로 팽배해 있고 ▲이씨가 자수모임에서 탁씨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도움을 요청했으며 ▲자수시기가 탁씨등과의 소송기일을 전후해 택해진 점을 지적하고 있다.
나아가 살해암장사실을 알게된 세모측이 충분한 금전적인 보상을 대가로 적극적으로 자수를 유도했을 가능성도 있다. 32명 집단변사 악령에 시달리고 있는 세모측이 어차피 증거부족과 시간경과로 수사기관에서 집단변사의 정확한 진상을 밝히지 못할 것으로 계산,자수이후의 비난과 파문을 예상하면서도 오대양과의 무관함을 입증키 위해 자수를 결행시킨 게 아니냐는 추측이다.
또다른 추정은 오대양의 비밀을 많이 알고 있는 암장범들이 세모측에 협박성 자수제의를 했을 가능성이다.
암장범들 대부분이 오대양의 핵심간부를 지내 박순자씨 사채의 흐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자수후 사채행방 폭로를 미끼로 사후 생계보장과 법률적인 지원을 요구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러가지 추정중 어느 것도 자수동기를 매끄럽게 설명할 수없다는 점이 이 사건의 독특한 점이다.
◇집단변사와의 관련성=자수동기와 집단변사간에 직접적인 함수관계는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으나 양자는 오대양사건의 뿌리에 해당하므로 수사결과에 따라서는 진상규명이 급진전될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암장범들이 자수를 앞두고 경찰에 보낸 편지에서 「집단변사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자수했다고 밝힌 대목도 눈길을 끌고 있다.
세모측과 구원파의 개입이 드러난 현시점에서 볼때 이러한 자수동기표명은 암매장사실이 탄로날 것을 두려워한 박순자씨가 위기감에 쫓겨 「죽음의식」을 감행했다고 증언함으로써 집단자살을 기정사실화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점에서,집단변사의 진상을 숨기려는 세력이 있지 않느냐는 의심과 연결된다.
또 암장범들이 그동안의 수사과정에서 32명의 죽음에 대해 하나같이 「자살한 것 같다」고 일치된 진술을 한 것이 세모측의 교육에 의한 것이라면 뭔가 숨기는 구석이 더 있음을 반증하는 셈이다.
많은 불이익을 감수해서라도 자수를 통해 얻으려고 기도했던 배후세력의 「이득」을 밝히는 것이 자수동기와 집단변사의 관련성을 규명하는 열쇠임은 분명하다.<대전=특별취재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