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테이프 사용 진술 서로 맞춰/집단자수 6인의 1년 모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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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오대양 비난말라” 잇단 회유작업/조사받을때 몸짓까지 예습·복습
(주)세모와 구원파가 김도현씨(38) 등 오대양사건 관련자들과 1년이 넘도록 모임을 가지며 현직 경찰관과 함께 자수를 사전에 철저히 계획하고 지시한 사실이 밝혀져 새삼 이들의 자수동기가 의혹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세모와 유병언 사장은 지금까지 자수한 김씨 등을 알지 못하는 것은 물론 구원파와도 80년 이후부터는 관계가 없다고 주장해 왔으나 세모 간부·구원파 측이 1년이 넘도록 함께 모여 오대양 관계자들의 자수를 공동으로 지도해온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수한 김씨 등이 서로의 진술을 녹음까지 해가며 어긋나는 부분을 고쳐온 것으로 밝혀져 이들의 진술테이프가 세모의 유 사장과 구원파 지도부에까지 전달됐을 가능성을 점치게 하고 있다.
또 이 자수모임에는 세모측이 오대양 박순자씨의 동생 박용준씨(41)를 참석시켜 자수자들에게 오대양에 대한 악감정을 풀도록 회유한 것으로 드러나 세모와 구원파가 대외적으로 오대양을 비난해온 것과 달리 오대양에 대해 호의를 갖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자수모임=자수자들은 지난해초부터 서울 청담동 이재문씨(40) 집에서 만나기 시작했으며 처음에는 김도현·이세윤·문윤중씨(이상 자수자) 부부와 정화진씨(45·여) 등이 참석했다는 것.
이 모임에는 처음부터 서울 서초경찰서 정보과 이영문 형사가 참석해 오대양 생존자인 김씨 등에게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는 등 위로를 하며 호의를 보였다는 것이다.
이들은 매주 일요일 오전에 만나 오후 7∼8시까지 함께 지냈으며 평일에도 수시로 만나는 등 거의 공동생활에 가까울 정도로 자주 모여 과거 오대양에서의 생활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는 것이다.
같은해 6월에는 박명자씨(35·암매장된 노순호씨 부인)가 참석했으며 9월에는 이순희(32·여)·오창자씨 등이 차례로 모임에 합세했다는 것이다.
인원이 어느정도 모이자 세모 해외개발 부장인 윤병덕씨와 남편이 세모 부천공장 차장이며 구원파가 발행하는 잡지 『새길』의 기자인 최숙희씨(35·여)도 모임에 나오기 시작해 이들이 모임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은 일방적으로 지시만을 일삼아 참석자들의 반발을 샀고 금년 2월께 윤씨와 최씨가 모임에 나오지 않게 되면서부터는 이재무씨와 서초서 이 형사가 모임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이들이 자수를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금년 2월말∼3월초였으며 이때부터 세모와 구원파에서 나온 사람들은 『자수안하면 괴롭지 않으냐』 『나중에 더 큰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며 자수압력을 가해왔다는 것.
자수가 결정되면서부터 이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던 오민철(34)·김강규(31)·한호재(38)씨 등 살해 암매장 관련자들을 모임에 불러내 『우리만 자수하면 나중에 더 큰 벌을 받는다』며 자수에 합류하도록 강요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녹음테이프를 사용해 서로의 진술이 어긋나는 부분을 확인하며 말을 맞췄고 경찰에서 조서를 받을때의 몸짓까지 반복학습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확한 자수동기에 대해 자수한 김씨 등은 아직까지 『세모측의 압력도 받았으나 양심의 가책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참고인 정화진씨 등은 『남자들끼리만 얘기해서 잘 모른다』로 일관하고 있어 무언가 밝혀지지 않은 동기가 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또 『87년 당시 발생한 32명 집단변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자수하겠다』는 내용의 자수편지는 이 형사가 써준 것으로 드러나 이들의 자수는 철저하게 상부의 지시에 의한 것임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의문점=세모측이 무엇때문에 1년여 동안이나 오대양관련자들을 관리하면서 세상이 모르는 살해 암매장사건을 자수하도록 지시해 평지풍파를 자초했느냐는 부분은 아직까지 베일에 덮여있다.
지금까지 추정되고 있는 자수동기는 자수자들 스스로의 필요에 의한 것이라는 「정리설」과 세모의 권유에 따랐다는 「지시설」로 나뉘어 있었다. 그러나 세모와 구원파의 자수권유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정리설은 가능성이 희박하게 됐다.
권유설 배경으로는 지금까지 ▲구원파내부의 알력이거나 ▲세모 유 사장과 종교연구가 탁명환씨와의 소송에 앞서 이를 정리하려는 의도라는 것이지만 자수모임과정을 볼때 세모나 구원파가 자수를 시켜야만할 더욱 절박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 거의 확실해짐에 따라 자수목적에 대한 검찰수사결과가 크게 주목되고 있다.<대전=김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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