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쩍 끼워넣은 이중 대표소송제 개정안 논란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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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이중(二重) 대표소송제 등이 법무부의 상법 개정안에 최종 포함되면서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상법쟁점조정위원회의 개정안에 대해 재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김준규 법무부 법무실장은 6일 "재계의 입장을 대표한 조정위원도 절충안에 찬성했다"며 진화에 나섰다. 그는 "재계의 요구로 조정위를 열어 다섯 명의 위원이 만장일치로 결정했다면 정부 안을 존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부는 지난해 12월 재계의 반발이 크자 조정위를 구성, 김 법무실장을 위원장으로 재계 추천을 받은 전삼현 숭실대 교수, 경제개혁연대 추천의 김영희 변호사, 법무부 추천의 임재연(성균관대).왕상한(서강대) 교수를 위촉해 논의를 해왔다.

◆이중 대표소송의 실효성 논란=조정위원들은 "이중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요건이 엄격해져 소송 남발 우려가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법무부의 당초 입법예고안에는 '모회사가 자회사의 지분 50% 이상을 소유한 경우 모회사 주식의 1% 이상을 가진 주주가 소송을 낼 수 있다'고만 돼 있었으나 조정위를 통해 단서가 추가됐다. 새로 들어간 부분은 '모회사와 비상장 자회사 간 실질적 지배관계가 인정될 때 소송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실질적 지배관계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두 회사 이사의 겸임 여부 ▶출자자 중복 여부 등을 확인하도록 상법 개정안이 수정됐다. 실질적 지배관계 부분은 왕상한 교수의 제안이 포함된 것이라고 법무부 관계자가 전했다. 당초 재계는 모회사가 자회사 지분의 3분의 2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고 요구했었다. 그러나 시민단체 측은 30%로 보유 조건을 완화할 것을 주장하는 등 입장 차가 컸다.

재계 대표인 전삼현 교수는 "소송 남발 가능성이 90% 이상 줄었다"며 "합리적 논의여서 수용했다"고 말했다. 당초 법무부 안을 지지했던 임재연 교수도 "도입하는 모양만 갖춘 것"이라며 "일반적인 소액주주가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을 내는 것은 예상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시민단체 쪽의 김영희 변호사도 "시민단체가 양보해 재계의 요구를 많이 수용했는데도 여전히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재계 반발=재계는 "법무부가 소송 남발 방지를 위해 '실질 지배관계 요건'을 추가했지만, 실제 내용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당초 이중 대표소송제의 요건인 '모기업의 비상장 자회사의 지분 50% 초과'만으로도 원고 측이 '실질 지배관계'에 있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경련은 "이중 대표소송을 성문화한 나라가 없을 뿐 아니라 이로 인해 독립 경영이 저해되고 위험을 피하려는 경영을 부추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경련 측은 앞으로 이 조정안에 대한 세미나나 공청회 등을 열어 재계 의견을 관계 부처 회의나 국회 논의 과정에 적극 반영키로 했다.

법무부는 5월께 상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나 재계의 강한 반발로 입법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법무부 관계자는 "현재 국회에는 열린우리당 의원 등이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쪽으로 이중대표소송제를 강화한 상법개정안이 제출돼 있다"며 "재계가 국회 논의에 앞서 세몰이에 나서는 측면도 크다"고 지적했다.

이현상.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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