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변호사, 당신도 BMW탄 '덤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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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언제나 진화한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주로 쓰이는 속어도 마찬가지다. 특히 비즈니스 속어의 진화 속도는 어떤 분야보다도 빠르다. MBA(Master of Business Administration) 학위를 두고 '기혼이지만 미혼'(Married, But Available)이란 뜻이라며 킬킬거리던 것은 옛말. 여전히 익숙한 비즈니스 용어를 뒤집는 경우도 많지만, 요즘 새로운 경향은 정보통신 용어의 뜻을 바꾸는 것이 주류다.

영미 주요 비즈니스 관련 서적과 잡지들이 소개하고 있는 2007년 유행할 비즈니스 신조어 사전을 들여다본다.

▶애플루엔자(Affluenza: '풍부하다'(affluent)와 '인플루엔자'(influenza)의 합성어로, 일과 놀이를 즐기기 위해 시간과 돈을 지나치게 많이 소비하는 상태를 뜻한다. 누구나 그렇듯 신통치 않은 일과 삶이란 증상으로 나타난다.

▶VIP: 원래 '매우 중요한 인물(Very Important Person)'이라는 뜻이었으나, 직장내에서는 '매우 소극적인 인물(Very Inactive Person)'이란 뜻으로 쓰인다. 원래 뜻을 변형해, '앞자리가 비어있는데도 뒷자리를 고집하는 경우'에 쓰이기도 한다. 예를 들면 버스를 탈 때 '앞좌석에 앉으실래요?'하고 물으면 '괜찮습니다. VIP로 타죠' 하는 식이다.

▶Bond Year: 채권과 관련된 해가 아니다. 007 제임스 본드라는 이름에서 나온 용어로, 끝이 007로 끝나는 해를 뜻한다. 올해가 바로 '본드 이어'다.

▶고어 효과: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앨 고어가 지구 온난화를 포함한 환경 문제에 지나치게 많은 관심을 가진 것을 빗댄 말. 비정상적인 날씨나 비.우박.눈 등의 기상 이변을 두고 '고어 효과'라고 한다.

▶대역폭(Bandwidth): 원래는 정보통신 용어로, 각종 신호가 전달되는 범위를 뜻한다. 그러나 지금은 한 사람의 근무 능력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어떤 사람의 대역폭에 따라 자신의 일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느냐 마느냐가 결정된다.

▶BMW(Bitchers, Moaners and Whiners): 명차 브랜드가 아니다. 어느 조직에나 있게 마련인 불평불만자, 신세한탄자, 그리고 투덜이들.

▶덤피(Dumpies): 가난하고 노후가 불안한 중년의 전문직 종사자들(Destitute, unprepared, middle-aged proffessionals). 기업 퇴직 연금에도 가입하지 못한 상황에서 다른 대체 수단을 강구해두지 않은 실속 없는 전문직.

▶50-50-90 법칙: 정해진 시간 내에 일을 해낼 확률이 반반이라면, 그 시간의 90%를 대개 잘못 써버린다는 법칙.

▶걸리버 효과: 대규모 목표물이 다수의 소규모 경쟁자에 포획된 상태. 걸리버 여행기에서 소인들에 포로로 잡힌 걸리버에서 나온 말로,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전통적 대기업이 소규모 벤처 기업에 발목이 잡혔을 때 흔히 쓰인다.

▶아이팟(iPod): 애플사가 내놓은 세계적 히트 상품인 MP3가 아니다. '불안정하고, 억눌리고, 세금 부담만 많으며 빚에 시달리는'(Insecure, pressurised, over-taxed and debt-ridden)이란 뜻이다. 과도한 부채로 재산을 장만하기 힘든 18세에서 30세의 청년층을 의미한다.

▶립스틱 지수(Lipstick indicator): 불안감이 높아지는 시기에는 소비자들이 거창하거나 비싼 명품을 사지 못하는 대신 립스틱같은 소품 중에서 명품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명품 립스틱을 얼마나 사느냐는 사회적 불안감의 잣대가 될 수 있다.

▶휴대폰 마카레나춤(mobile macarena): 원래 마카레나는 90년대 중반 유행했던 춤이다. 여럿이 동시에 경쾌한 리듬에 맞춰 추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공공장소에서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면 이 춤과 똑같은 동작이 연출된다. 벨이 울리면 먼저 손이 바지 앞주머니로 가고, 다음에는 뒷주머니, 그 다음에는 손이 셔츠의 가슴팍 주머니를 더듬는 식이다. 그것도 대부분 사람들이 똑같이.

▶나노스탤지어(Nanostalgia): 향수를 뜻하는 노스탤지어(nostalgia)에 극미립자를 뜻하는 나노(nano)가 붙었다. 지난지 얼마 되지 않은 과거에 대한 회고. 예를 들어 새천년에 대한 회고라든지 Y2K 문제에 대한 언급이 여기에 해당된다.

▶논라인(Nonline): 온라인(online)의 반대 개념. 아직도 온라인 환경에서 뒤떨어진 채 하는 사업을 의미한다.

▶오픈 칼라(Open-collar): 화이트 칼라, 블루 칼라, 그리고 유망한 전문직 종사자나 프리랜서를 뜻하는 골든 칼라에 이어 이번에는 오픈 칼라다. 집에서 인터넷을 통해 일하는 이들로, 이들은 칼라가 있는 옷을 입지 않는다.

▶피크닉(PICNIC): '컴퓨터가 아니라 사용자의 문제'(Problem In Chair, Not In Computer)의 약자. 컴퓨터에 문제가 있다고 불평을 늘어놓는 경우의 대부분은 사용자인 근로자가 컴퓨터를 다룰 줄 모르는 경우다.

▶휴가관계(vacationship) : 다른 지역, 다른 회사에 근무하는 직장인끼리 연애를 하다 보면 휴가 기간 외에는 같이 보낼 시간이 없어진다. 휴가 때만 만나는 관계를 뜻한다. '휴가(vacation)'와 '관계'(relationship)'의 합성어.

▶구두 폭탄 테러범(Shoeicide bombers): 항공기가 자살 폭탄 테러범(suicide bombers)들의 목표가 되면서, 근로자들은 해외 출장시 공항에서 구두를 벗는 수고를 감수해야만 한다. 그런 위협을 총칭하는 신조어.

▶1661 미인: 뒤에서는 16세처럼 보이지만, 앞에서는 61세인 여성. 우리 말의 '100미터 미인'쯤에 해당된다고나 할까.

▶스핌(Spim): MSN이나 네이트온 같은 메신저(Instant messaging system) 사용자들을 겨냥한 스팸.

▶V2V: B2B, C2C라는 정보통신 용어의 패러디. 음성 대 음성(voice to voice)의 약자로, 쉽게 말해 메일이나 메신저.문자 메시지 대신 전화로 얘기하는 것을 뜻한다.

▶젖은 서명(wet signature): 전자 결재나 서명이 보편화하면서 지금은 결재 서류에 펜으로 서명하는 경우가 오히려 드물다. 펜으로 꾹 눌러쓴 서명, 젖은 서명이 벌써 나노스탤지어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이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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