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침떼기 작전 「건설업계 담합」/오체영 경제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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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신랑」「떡값」「떡쟁이」.
입찰과정에서의 뿌리깊은 담합을 아직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우리 건설업계의 해묵은 은어들이다.
건설공사의 공개입찰에 앞서 건설업체들끼리 짜고 돌아가면서 「떡」을 먹을 업체(신랑)를 선정하고,「신랑」이 공사를 딴뒤 공사비의 5∼10%를 사례비(떡값)로 내놓으면 다들 이를 나눠갖는데 그러다보니 공사에는 아예 관심이 없고 「떡값」에만 신경을 쓰는 사람들(떡쟁이)도 있게 마련이다.
이같은 담합은 결국 「비싼값의 부실공사」를 낳기 십상이다. 지난 85년 독립기념관에 불이 났을때 정부가 기획원차관을 반장으로 특별대책반을 운영하면서까지 뿌리를 뽑으려고 했지만 별 효력이 없었다.
사실 어느 담합이고 마찬가지지만 담합의 증거를 잡아내기란 여간해선 어려운 일인데,최근 MIT라는 한 건설업체의 박모사장이 자신이 당한 「담합의 피해」를 신문사에 알려왔다.
담합의 실상을 소상히 담은 전화의 녹음테이프까지 제시하며 그가 전한 내용은 이렇다.
지난달 한국마사회는 말이 다니는 길에 우레탄을 까는 공사를 발주했다.
입찰 하루전인 지난달 12일 모건설의 정모사장이 찾아와 『떡값으로 공사비의 5%를 줄테니 입찰을 포기해달라』고 요구했으나 그는 거절했다.
7월13일의 1차 입찰이 우여곡절 끝에 유찰되고 지난달 22일 오전 11시 2차입찰이 열렸다.
박씨는 이날 일찍 도착했으나 「떡쟁이」들이 박씨를 입찰장 건물밖으로 불러 담합을 종용하며 「시간끌기」작전을 펴는 바람에 박씨는 결국 입찰장에 들어갈 수 없었고 9개 업체가 들러리를 선 입찰에서 공사는 결국 그 건설업체에 낙찰됐다.
이 과정에서 고함이 오가는등 입찰장 주변은 매우 소란했다. 그러나 마사회등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담합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그러나 MIT사측은 증거자료로 녹음테이프를 남겨놓았고 이에 대한 마사회나 해당 건설회사의 답변은 이렇다.
『담합이란 것은 있을 수 없고 우리는 다만 제 시간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입찰을 진행시켰을 뿐이지요.』
『마사회는 정당하게 공무집행을 했고 우리는 정식입찰에서 공사를 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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