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 비해 값싸 수입밀물 중국 농산물 홍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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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중국을 우리 농업의 배후생산기지로 활용, 국내 농산물 값이 오르면 즉각 수입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계획이다.』
지난 3월 농산물 가격이 큰 폭으로 올라 물가에 부담을 주던 때 최각규 부총리겸경제기획원장관이 기자간담회에서 한 얘기다.
최부총리의 이같은 발언은 과천정부종합청사와 정치권일부를 발각 들쑤셔놓았다. 일부는 긍정적인 해석을 했으나 농림수산부와 정치권은 한 목소리로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을 앞두고 때가 어느 때인데 경제팀의 총수가 함부로 그런 말을 하느냐』고 몰아 붙였다.
시간이 지나고 다른 경제현안에 묻혀 최부총리의 발언은 단발사건으로 넘어가 버렸다.
그러나 중국 수입농산물은 이미 우리 생활 곳곳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올 들어 5월말현재 대 중국수출(홍콩을 통한 간접수출제외)은 3억4백만달러인데 비해 수입은 11억7천8백만달러로 8억7천4백만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이중 농산물의 대중국수출은 전무한 반면 수입은 5월말 현재 3억5천4백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0·6%가 늘어나 대중국무역적자의 가장 큰 부문을 차지하고 있다.
관세청의 동관자료에 따르면 대 중국 품목별 수입비중에서 농수산품은 31·7%로 가장비중이 높다.
중국산농산물의 수입이 크게 늘고있는 것은 값이 싼데다 우리정부입장에서도 「물가」정책적인 측면에서 이를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품목별 수입동향을 보면 땅콩의 경우 5월말까지 1천2백만달러어치가 중국에서 들어왔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7배가 많은 것이다.
올해 땅콩의 국내수요는 모두 3만5천t. 이가운데 국내 생산은 l만7천대t뿐이고 중국으로부터 수입이 l만8천t에 달할 전망이다.
중국산수입가격은 ㎏당 8백73원인데 비해 국산땅콩의 도매가격은 2천2백45원으로 가격경쟁이 되지 못한다.
참깨는 5월말 현재 중국으로부터 7백58만달러어치를 수입했는데 이는 지난해에 비해 1백28%나 늘어난 것이다.
중국산참깨의 수입가격은 ㎏당 1천l백58원. 국내생산참깨의 도매가격은 7천2백85원이나 된다.
이같은 엄청난 가격차이로 인해 정부에서는 일단 땅콩·참깨 등 주요수입농산물 11개 품목은 수입창구를 농수산물유통공사로 단일화시켰다.
유통공사는 이들 상품을 국산가격의 70∼90%선에서 경매에 부치며 경매가격에서 수입가격을 뺀 차익은 모두 농수산물 가격안정기금으로 적립시키고 있다. 기금규모는 이미 5천억원을 웃돌고 있다.
하지만 중국산 농산물은 우리 나라와 비슷한 기후에서 값싼 노동력으로 재배되는데다 농산물교역의 관건인 짧은 수송거리가 장점으로 꼽히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산 농산물에 밀려 국내농산물이 도태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추세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수입농산물 홍수를 맞아 더 큰 문제는 값싼 수입품이 국산으로 교묘히 둔갑해 팔리는 유통구조의 고질적인 병폐다. 전문가들은 이런 유통구조의 불합리가 남아 있는 한 농산물 수업은 국내시장가격안정이라는 긍정적 측면보다 결국 상인들의 배만 불리고 농민·소비자들은 손해만 보는 부정적인 측면이 더 부각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경동시장에서 팔리는 참깨의 경우 알이 작고 하얀색의 국산과 씨알이 굵고 누런빛이 나는 중국산을 뒤섞어 팔고있는데 값은 국산가격을 받는다.
더덕이나 고사리 등 소비자들이 우리 특산물로 알고 있는 품목도 시중에 팔리는 상품은 거의 전부 중국산이다.
이런 품목에서 국산품을 가리는 것은 일단 수입포장만 뜯어내면 전문가가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 게다가 상인들의 수법도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소매시장뿐만 아니다. 농협자체조사에 따르면 담양시장에 나오는 죽제품 가운데도 절반 가까이 중국산이고 삽다리나 정창시장에 나오는 더덕· 고사리도 중국산이 상당수 끼여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지난해에는 농협에서 수매하는 참깨에 일부 농민이 중국산 참깨를 싼값으로 구입해 비싼 가격으로 농협에 팔려다 적발돼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밖에 중국산 당면·나무젓가락·물수건·대나무 우산 등 국내 저가시장을 맹폭하고 있는 상품은 일일이 손꼽을 수 없다.
이에 따라 상공부는 지난해말 국내업계의 산업피해구제신청을 받아들여 중국산 나무젓가락의 관세율을 13%에서 53%로 올린데 이어 올해는 중국산 당면수입급증에 따른 국내산업 피해조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중국산농산물의 수입은 갈수록 늘어날 뿐 고개 숙이지 않고 있다. 관세율을 올려도 가격이 워낙 싸 수입통제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방진출을 염두에 둔 정부로서는 중국 수입품에 대해 파격적인 수입제한조치를 취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농산물 개방이 피할 수 없는 추세라면 보다 능동적인 측면에서 현지조사하고 품질분석을 하는 등 중국농산물시장을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며 『국내농산물 가운데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는 품목은 전업을 유도하고 유통체계를 엄격히 관리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이철호·오재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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