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꼬 트이는 남북 경제교류/안병준 연세대교수·국제정치(긴급진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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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가시적 성과에 집착 말아야/북한측 기대 과감히 수용하면서 모두가 결속 책임있는 행동 필요
1991년 7월27일은 휴전협정이 조인된지 38년이 되는 날이다. 바로 이날 북한의 나진을 향해 5천t의 남한산 쌀을 실은 배가 떠났다. 이것은 한반도가 양단된지 43년만에 처음으로 이루어지는 직교역이 되는 셈이다. 이 상징적인 행사와 함께 북한당국이 청진과 나진에 경제특구를 설치할 것이며 여기에 한국의 투자도 환영하겠다는 보도가 있다.
이와 같은 소식은 남북간에도 경제교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차제에 우리는 과연 어떠한 의도로 북한이 경제교류 및 협력에 접근하고 있는지를 심사숙고해 볼 필요가 있으며 이에 가장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북한은 분명히 남한으로부터 교역,투자 및 기술전수를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다만 이 초보단계에 있어서 경제교류는 자기들의 명분에 부합하고 내부에서 체제유지에 손상이 되지 않는 방법으로 추진할 것을 원하고 있다. 우선 북한은 재일 및 재미동포나 한국의 기업이 민간수준에서 북한에서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고 투자해 줄 것을 바라고 있다.
가능한한 이러한 협력은 공개하지 않고 은밀히 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사실도 최근에 알려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실제 거래와 상품인도는 외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상사가 담당하는 것만을 북한이 허용해왔던 것이다.
이와 같이 제3국이나 제3자를 통한 간접교역 및 투자와 더불어 북한은 국제기구나 여러나라들이 공동으로 실시하는 다변적인 협력에 한국기업들이 참여해줄 것을 희망하고 있다.
청진에 설치할 경제특구도 평양에 상주사무소를 가진 UNDP(유엔개발계획)로 하여금 추진하게 했던 것이 그 좋은 예다. 이 경우에도 북한은 외국상사와 합작하거나 외국에서 설립한 한국상사의 현지법인이 참여할 것을 바라고 있다. 중국의 혼춘에 남북한과 중소의 공동시장을 개설하는 것도 형식에 있어서는 이와 같은 다변적인 협력의 실례라 하겠다.
이와 같은 양상의 교류를 모색하면서 북한은 아직까지 남한과의 공식적인 경제협력을 성사하는데는 주저해 왔다. 사실 1985년에 다섯차례에 걸친 경제회담을 가졌고 거기서 양측은 구체적으로 교환할 수 있는 품목에 대한 합의서에 거의 동의했으나 북한은 그것에 조인하기를 꺼려했다. 작년 가을부터 열렸던 세차례의 남북고위급회담에서도 남측은 통상·통행 및 통신에 관한 이른바 「삼통협정」을 맺자고 제의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것이다.
따라서 진실로 북한이 남한과 직거래와 직접투자를 할 용의가 있는지는 8월말 평양에서 열릴 제4차 고위회담에서 확실히 밝혀질 것이다.
여러가지 자료에 의하면 북한은 현재 식량난과 에너지난에 직면해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고 한다. 지나치게 폐쇄된 체제로 인해 즉각통신과 첨단기술의 상호 의존경제에서 북한은 소외되어 왔다.
이제부터 이러한 고립을 탈피하고 미일 등 서방국가들과의 교류를 촉진시키기 위해서는 북한은 남한과의 교류에서 가시적인 결과를 내야 한다.
우리의 입장에서 볼때 북한과의 직교역 및 투자는 평화·협력·화해 및 통일이라는 목적에 기여할 수 있도록 일정한 원칙하에 추진해야 할 것이다.
우선 신뢰구축을 위해서도 교류의 물꼬를 터야 하며 이 때문에 위에서 설명한 바와같은 북한의 기대를 과감하게 수용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민간수준의 교류라는 명분으로 종래 통일전선전략의 일환으로서 교역과 거래를 시도하는 것은 철저하게 경계해야 할 것이다.
교역의 규모가 커지고 막대한 액수의 투자는 정부당국간의 합의와 주선없이 성취될 수는 없는 일이다.
만약 북한당국이 순수한 상부상조의 정신에서 교류하기로 결정했다면 고위회담에서나 경제회담을 재개해 실효성있는 협정을 협상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중장기적인 안목에서 남북간에 실질적으로 긴장을 완화하고 협력을 실현하는데는 경제협력과 군축이 가장 절실하게 요망된다. 북한은 군축에서,남한은 경협에서 각각 보다 적극적이고도 구체적인 제안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냉전과 걸프전의 종식후 오늘의 세계에서는 무력에 의하지 않는 전쟁,즉 경제전이 날로 격화되고 있다. 우리 민족도 이 지구상에서 냉전의 최후유산으로 남아 있는 남북대결을 하루속히 청산하고 투자와 기술의 경쟁에서 살아남고 함께 발전하고 번영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북한과의 경제교류에 대해 우리는 좀더 신중하고 조용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외형에 있어서 떠들썩한 행동이나 우리의 목적과 일관성을 상실한 거래나 상담 및 보도는 될수록 자제하는 것이 일을 착실히 성사시키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동포의 고통을 덜어주고 민족화해를 이룩하는 목적과 방법에 대해 우리는 결속을 보여야 한다. 앞으로 전개될 남북 경제협력을 실속있게 착실히 진전시키는 과업에 있어 개인과 기업,언론과 정부 등 각계각층은 협력하면서 더욱 더 책임있게 행동해가야 할 것이다. 우리들 사이에 이렇게 단합을 보일때 무에서 유를 창출해야 할 남북간 경제협력 및 교류의 앞날이 밝아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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