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정가에 BCCI스캔들/“메이저총리가 불법 묵인했다”야서 비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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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테러조직과 거래사실도 정보기관서 파악
금세기 최대 국제금융스캔들로 일컬어지고 있는 BCCI(국제상업신용은행)사건이 마침내 존 메이저 영국 총리에게까지 불똥을 튀기면서 심각한 정치스캔들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5일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이 전격적인 영업중지명령을 내리면서 시작된 BCCI 파문을 둘러싸고 그동안 영국 정가에서는 BCCI의 불법·변칙경영에 대한 영국 정부당국의 묵인·방조가능성에 관심이 집중돼왔다.
보수당정부가 BCCI의 불법행위를 진작부터 알고 있었으면서도 묵인해오다 뒤늦게 이를 문제삼음으로써 파장을 확대한 혐의가 짙다는 것이 야당측 주장이다.
야당측은 이번 사건의 당사자로 메이저 총리를 지목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총리로 취임하기전 메이저 총리의 직책이 다름아닌 재무장관이었기 때문이다.
메이저 총리는 22일 국회답변에서 야당측의 주장을 정면 부인하면서 자신이 BCCI의 불법경영사실에 대해 충분하게 알게된 것은 지난달말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의 이같은 주장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잉글랜드은행 총재 로빈 레이 펨버튼경은 BCCI에 대한 영업중지조치를 취한 뒤 얼마후 『지난해 메이저 당시 재무장관과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고 기자들에게 밝혔기 때문이다. 펨버튼 총재는 최근 말을 바꿔 『BCCI의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을 뿐』이라고 말해 더욱 의혹을 짙게 하고 있다.
영국정부의 묵인가능성은 아랍계 테러리스트들이 BCCI에 구좌를 갖고 있었다는 점을 영국정보기관이 파악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더욱 증폭되고 있다.
BCCI 하이드파크 지점장이었던 한 요르단인의 증언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테러조직인 아부 니달그룹이 가명구좌를 개설,직접거래해 왔으며,자신은 이 사실을 영국 정보기관 MI6에 보고해왔다고 폭로했다.
아부 니달그룹은 지난 88년 12월 2백59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코틀랜드 록커비 팬암기 폭파사건의 범인으로 영국경찰이 지목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언젠가 런던에 왔던 아부 니달이 탄 자동차가 고장나자 MI6 요원들이 그를 MI6의 자동차로 런던 히드로공항까지 정중히 바래다주기까지 했다는 사실이다.
영국 정부당국이 BCCI문제를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증거는 다른데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6월 BCCI의 런던시내 지점 책임자가 노동당의 토니 벤의원에게 사신을 보내 BCCI의 비리를 폭로했다.
벤 의원은 이 편지를 즉각 재무부에 보냈다. 이 편지에는 BCCI의 영국인 책임자들이 국제마약조직과 짜고 마약거래대금을 「세탁」해 준뒤 그 금액의 2%를 커미션조로 챙겼다는 내용등이 소상하게 기록돼 있었다.
메이저 총리는 이 편지를 본 일이 없다고 말하면서 BCCI와 국제테러조직과의 관계 등에 대해서도 일절 MI6으로부터 보고받은 바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메이저 총리의 부인에도 불구,BCCI 스캔들은 더욱 확대되고 있으며 앞으로 영국정치의 주요 쟁점이 될 것이 틀림없다.<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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