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토종 인형극 지키는 '父女 동업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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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인형극을 위해 태어난 녀석 같아요." "아직 아버지 따라가려면 멀었는 걸요."

몇해 전 영국의 '텔레토비'가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을 때 사람들은 마치 TV 인형극을 처음 보기라도 하는듯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잠시 그 명맥이 끊겼을 뿐 1970~80년대엔 텔레토비를 압도할 만한 '토종 인형 스타'들이 국내에도 수두룩했다. 올빼미 '부리부리 박사'와 소년 탐정 '짱구 박사'가 대표적인 예. 이들의 활약이 전파를 타는 해질녘이면 온 동네 꼬마들은 TV 앞에 붙어 앉아 박수를 쳐댔다.

이들 추억의 캐릭터는 모두 현대인형극회 대표 조용석(56.(右))씨 작품이다. 38년간 인형극에 매달려 온 趙대표는 국내 TV 인형극의 '대부(代父)'. 하지만 그는 1999년 초 브라운관을 떠나야 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국산 만화영화들이 속속 만들어지면서 인형극의 자리가 좁아졌기 때문이었다.

"인형극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절감했어요. 그래서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는 극장으로 돌아가겠다고 마음먹었죠."

40년 가까이 일해온 방송국을 떠났으니 처음부터 일이 쉽진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趙대표에게는 곧 막강한 '지원군'이 생겼다. 바로 딸 윤진(28.(左))씨가 아버지를 돕겠다고 나선 것이다.

"빵집 아이들이 빵 싫어하듯 어려선 인형이라면 치를 떨었어요. 그런데 크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그래서 2000년 인형극에 뛰어들었죠."

사실 윤진씨가 합세하기 전부터 趙대표 집안은 인형극 가족이었다. 趙대표의 세 형도 모두 인형극 제작자 출신. 부인 여영석(51)씨도 부리부리 박사를 연기했던 배우였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데다 대학에서 미술까지 전공한 윤진씨가 인형극을 시작한 것은 고기가 물을 만난 격. 2년여가 지난 지금은 趙대표조차 "재능이 없었다면 아예 시키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딸이어서가 아니라 정말 감각이 좋다"고 치켜세울 정도다.

인형극에 푹빠진 부녀는 힘을 합쳐 또 한 차례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다음달 6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정동극장에서 공연되는 '2003 크리스마스의 꿈'이 바로 그것. 윤진씨가 연출 등 실무 모두를 맡고 趙대표는 예술감독이란 직함으로 딸에게 노하우를 전수해 줬다. 막바지 준비로 바쁜 이들은 인형극의 매력을 이렇게 말했다.

"디지털 매체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인형극은 아이들에겐 상상력을, 어른들에겐 동심을 갖게 해줍니다." 공연문의 02-751-1500.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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