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메일 매니어 CEO 출산 전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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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한화63시티 정이만 사장
매주 직원 1200명에게 보낸
글 100편 모아 서한집 펴내

유아용품 전문업체 보령메디앙스의 조생현(61.사진) 대표이사는 '주례 선생님'을 자처한 덕분에 지난해 주말에는 결혼식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입춘(立春)이 두 번 끼어 길(吉)하다는 '쌍춘년(雙春年)'이어서 결혼하는 쌍이 예년보다 많았다. 하지만 회사 안팎의 주례 부탁을 마다하지 않았다. 특히 젊은 직원들의 주례에 열심이었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도 적잖았다. 주례를 앞두면 상가(喪家)를 가지 않는다는 관습 때문에 조사(弔事)에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가 주례에 열심인 것은 "아이 꼭 많이 낳아라"는 당부를 하고 싶어서다. 자신이 유아용품 업체 사장이라서 그러는 것 만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유아용품 시장 전망을 그려 보려고 여러 분석자료를 종합한 결과 '이런 저출산이 계속되면 나라가 망하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주례 열심히 서면서 출산 장려운동을 벌이는 게 유아용품이라는 업(業)의 성격에도 맞는다고 느꼈다. 1979년 보령제약에 입사한 그는 2003년 자회사인 보령메디앙스 대표에 취임한 뒤 출산을 독려하는 각종 이벤트를 기획했다. 백화점.할인점 문화센터에서 육아 관련 강좌를 열고 지난해엔 임신.출산 정보를 한자리에서 고객들에 제공하는 '아이맘 페스티발'을 개최했다. 홀트 등 입양 기관에 자사 제품을 보내 입양아를 도왔다. 한국에 시집온 베트남인 부인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베트남어 육아 가이드북을 발간했다.

회사 내에서는 '결혼 전도사'다. 틈만 나면 젊은 직원들에 결혼 빨리 하라고 설교(?)한다. 결혼 정보업체의 커플 매니저를 초빙해 미혼 직원들에게 '반려자 구하는 법' 같은 강의를 듣게 했다. 간부들에게는 직원들이 출산 휴가를 내는 데 대해 절대 눈치주지 말라고 강조한다. 아이를 낳으면 젖병.로션 등 자사 제품이 골고루 들어간'출산 축하팩'을 선물세트를 선사한다. 육아 관련 제품을 살 때 30~50%까지 할인도 해준다.

지난해 보령메디앙스의 매출은 약 1300억원으로 창사 이래 최고의 실적을 냈다. 올해 매출 목표는 30% 가량 늘려 잡았다. 동남아.중국 수출을 크게 늘리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조 대표는 " 아이에게 가장 좋은 걸 주려는 '모성(母性)'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결같았다"며 "저출산 시대를 맞아 유아용품이 사양산업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고 말했다.

김필규 기자

보령메디앙스 조생현 대표
주말엔 어김없이 결혼 주례
"아이 많이 낳아라" 꼭 당부

서울 여의도 63빌딩을 운영.관리하는 ㈜한화63시티의 정이만(55.사진) 사장은 '글 쓰는 CEO'로 통한다. 한화그룹 홍보팀장 재직 시절 사보에 '내일을 연다'라는 고정 칼럼을 썼다. 2003년 3월부터 계열 광고 대행사인 한컴 사장으로 일할 때는 매주 직원들에게 e-메일을 보냈다. 글쓰기를 통한 그의 '감성 경영'은 2004년 10월 지금 회사의 대표로 온 이후에도 이어졌다. 취임 20여일 뒤 첫 e-메일을 보낸 이후 지금까지 매주 월요일 한 주도 빠짐없이 1200여 명의 직원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그는 '안녕하십니까, 정이만입니다'라는 제목의 첫 메일에서 "위 아래가 같은 생각을 가지면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정 사장은 이렇게 쓴 CEO 메일 100편을 모아 서한집 '세상 가장 높은 곳에서 보내는 가장 낮은 고백'을 1일 펴냈다. 5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에다 세련된 장정이지만 비매품이다. 그는 "매주 나름대로 고민하며 쓴 글들이라 PC 속에만 담아 두기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회사 임직원 이외에 지인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정 사장의 글솜씨는 정평이 있다. 사소한 개인사나 신변잡기라도 말랑말랑하게 매만져 의미있는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다는 평가다. 딱딱한 경영 방침을 감칠맛 나게 전달한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편지에서 인용되는 역사적 사실이나 인용문 등을 보면 그의 독서 범위가 만만찮음을 가늠케 한다. 그렇더라도 매주 새로운 메시지를 담아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때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주말 내내 머리를 싸매고 월요일 출근길 차 안에서까지 끙끙댄 적도 많아요."

스트레스를 참으며 편지 쓰기를 멈추지 않는 것은 상하 간 의사소통이 잘 돼야 건강하게 살아 움직이는 조직이 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책에는 정 사장의 편지 뿐만 아니라 직원들이 보낸 답장 40편도 수록됐다. 자산관리팀의 양해기 대리는 "처음 메일을 받을 때는 '한두 번 보내다 말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다양하고 성의있는 글을 계속 보내는 걸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정 사장의 감성경영은 경영성과로도 이어지고 있다. 사장 부임 후 식당가 및 매장에 대한 전면 쇄신작업을 펼쳐 63빌딩의 분위기를 확 바꿨다는 평을 받았다. 이에 힘입어 63빌딩의 12월 식음료 판매 및 영화관.전망대 등 관람 수입은 예년 80억원 대이던 것이 지난해에는 95억원 대까지 뛰었다.

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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