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운동|김채원<소설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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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미래의 어느날, 훗날 태어난 어느 여자가, 참 옛날에는 남의 집 아들들을 데려다가 전쟁을 시켰때, 전쟁에 나가서 하나뿐인 목숨을 잃기도 했대라고 신기해하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우리가 지금 옛날에 있었던 여러 가지 법도·제도에 대해 기이하게 여기듯.
사람의 생각이나 법도·제도들은 변하고 바뀌어가게 되어 있는 것 같다. 이 바뀌어가는 생각이나 법도에 따라 사람을 너무 구속하는 일은 없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이래야 한다, 저것은 저래야 한다 식의 굳은 생각 때문에 스스로 족쇄를 채우다 인생을 그르치지 말아야겠다. 모든 것을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평화중심으로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사람은 그 어떤 외적인 상황이나 조건 외에 자신만의 고유한 존재이기도 한 때문이다.
인본주의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 속에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인간 그 자체를 존중하는 창조의 본래적 의미가 깃들여 있는 것 같다.
여성운동도 인본주의에서 시작된 것이리라. 앞서가는 여성의 희생과 용기의 덕으로 지금은 우리나라에도 비교적 일반화되었고 차츰 여성 스스로 각성도 하게 되었다. 아직 가야할 길은 멀고 벽에 부닥칠 때마다 새롭게 깨어나야 하겠지만, 그러나 자칫 여성 고유의 것이 잃어지지 않는가 염려가 일기도 하는데 생활 속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닌 어떤 공동 목표란 또 하나의 굳은 생각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을 하는 여성이 우월하다고 보는 시각 같은 것도 시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곳이 어디이든 자신의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모든 일의 값이 다 돈으로 환치되는 사회에 여성의 가사노동만 무보수인 것에서 그런 시각이 나오는 것일 터인데, 돈이 독립의 바위라는 말도 있듯 경제력이 있을 때 정신적인 독립 역시 가능하다눈 것을 우리는 체험한다.
그리고 말하고 싶은 것은 이즈음 능력있는 여성들이 우후죽순처럼 여기저기 자라고 있는 것에 반비례해 남성들이 왜소해진 점을 사람들은 지적한다. 『양철북』에 나오는 할머니가 열두 치마폭 속에 남자를 숨겨주었듯 여자 치마폭 속으로 들어가려는 남자들이 많은 것 같다. 남자를 또 하나의 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는 말을 유행어처럼 많이 하고 있지만 어느 면으로 이해는 가나 우리나라 남자들의 유아스러움이 그대로 노출된 얘기인 것 같아 아쉽다 못해 기분이 언짢아진다. 그것이 하나의 유형은 될 수 있을지언정 어른은 유아에서 벗어난 어른의 성숙함을 지녀야 한다고 본다. 모성을 느끼게 될 때란 남성이 유아적일 때가 아니라 성실하고 순수할 때가 아닐까.
인생살이는 슬픔에서 영혼의 힘을 얻고, 원래 수고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으리라 하는데, 이 우주속 단 두개의 성인남자와 여자가 같이 성숙하며 둔화되지 않고 조화롭게 살아보는 것, 여성운동의 참이슈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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