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새 지폐에 한국 설비 도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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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새 화폐 도안에 한국산 발전설비가 등장했다.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각별한 관심으로 쿠바는 올해 초 10페소(약 1만원)짜리 새 지폐를 만들면서 '에너지 혁명(Revolucion Energetica)'이라는 문구와 함께 현대중공업이 수출한 이동식 발전 설비 도안을 새겼다. 이 설비는 40피트짜리 컨테이너 박스에 엔진과 발전기를 넣어 전기를 생산하는 기기로 발전기용 컨테이너 4기와 컨트롤러 박스 1기가 한 세트로 구성된다. 화폐 도안은 이 발전 설비 한 세트다. 한 세트가 2000~3000가구에 25~30년 동안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

주로 혁명 인물이 등장하는 쿠바 화폐 도안에 이 같은 발전 설비가 들어가게 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쿠바는 섬이 많은 데다 수시로 허리케인이 몰아쳐 대형 발전소를 지어 관리하기 어려운 나라다. 그래서 전력난 해결은 그동안 이 나라의 으뜸 과제였다.

지난해를 '전기혁명의 해'로 정한 쿠바는 한국산 이동식 발전 설비를 수입해 쿠바 전역 41곳에 544기를 설치 중이다. 올 연말 이 작업이 끝나면 쿠바의 전력난은 완전히 해소된다. 이 발전 설비가 쿠바의 전기혁명을 '승리'로 이끈 주역인 셈이다.

이 설비에 대한 카스트로 의장의 애정은 남다르다. 쿠바는 2005년 이 발전 설비를 7억2000만 달러에 주문했다. 이는 2005년 당시 한국과 쿠바의 연간 교역량(약 1억5000만 달러)의 5배에 육박하는 금액인데도 카스트로 의장이 전례 없이 선수금까지 지급하라고 명령했을 정도다. 현재 대장 질환으로 입원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카스트로 의장은 지난해 7월 몸이 불편한데도 공사현장을 방문해 한국 엔지니어를 격려하고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그는 한국인 엔지니어들이 하루 12~14시간 일한다는 말을 듣고는 "나만큼 일한다. 한국인의 근면성을 쿠바도 배워야겠다"고 말했다.

카스트로 의장은 최근 쿠바를 중남미 전력산업의 허브로 발전시키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현대중공업 김헌태 전무는 "쿠바가 그 나라의 얼굴 격인 화폐 도안에 우리 설비를 새긴 뜻은 그만큼 제품을 신뢰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며 "한국 기업의 위상을 높여 기쁘다"고 말했다.

양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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